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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워싱턴 햇살보다 따가운 충고

입력
2016.08.0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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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미국을 다녀왔다. 연구자들 해외출장은 한 곳에서 열리는 학술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게 흔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전개하는 ‘한반도 평화조약’ 체결을 위한 국제 캠페인의 일환으로 미국 순례에 동행했다. 20여명으로 꾸려진 사절단은 네 대의 승합차로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10여개 주를 지나 워싱턴시까지 평화 순례를 진행했다. 협의회 총무는 이 일정을 구한말 국권을 지키려고 미국을 찾은 애국지사들의 경우와 견주기도 했다. 사절단은 몇 개 도시에서 한인교회, 미국교회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 워싱턴시에서는 미 행정부와 의회의 여러 관계자를 만나 평화조약안을 설명하고 미국의 역할을 촉구했다.

순례에 참가하며 광활한 미국의 풍요와 평화에 부러움이 일기도 했지만 ‘미국식 기준’과 ‘미국 예외주의’를 내걸고 패권을 휘두르는 오만에 반발감도 생겼다. 미국 대통령이 취임 선서할 때 성경 위에 손을 올린다. 그렇지만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의 착취와 수탈을 상기할 때 다른 한 손에 쥐었던 총을 모두 내려놓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한국교회 사절단의 방문 취지를 이해하고 의견을 경청해주었다. 사절단이 미국 의회, 정부, 교회를 막론하고 일관되게 강조한 점은 남북한과 미국이 한국전쟁을 종식하지 않고 적대관계를 지속하는 일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실현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기로 한 사드(THAAD) 시스템과 북한에 대한 전면적이고 지속적인 제재도 평화와 거리가 멀다고 했다. 거기에는 북한을 무찔러야 할 악으로 보는 이분법적 태도가 있다는 것이다. 북미 간 적대관계와 한반도 긴장 고조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보다는 위협인식을 가중해 북한 정권의 핵개발 논리를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도 그 연장 선상이다.

교회 사절단의 이런 주장은 어떤 전략적인 판단보다는 성서와 교회의 평화주의 전통에 입각한 것이다. 물론 사절단의 입장은 한국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분단,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한국교회는 반공, 반북, 친미노선의 최일선에 서왔다. 사절단이 미국 출발 전에 발표한 평화조약안은 그런 교회 단체들로부터 비판을 사기도 했다. ‘지금이 평화조약을 얘기할 땐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 아닌가’ ‘북핵 포기가 우선이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예상했던 거다. 평화 사절단에 참여한 목회자들도 설교에 평화조약을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평화조약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그 실현을 위해 해결할 과제를 먼저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들의 평화조약 캠페인은 ‘원수를 사랑하라’ ‘악을 선으로 이겨내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종북 낙인이 예상되는 가운데서 이런 교회의 평화운동은 침체된 국내 평화통일운동을 깨우고, 국제협력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

지난달 하순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양당 전당대회에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워싱턴시는 조용했다. 외교안보정책도 국내정치를 초월할 수는 없다. 그런 가운데서도 재미한인교회와 미국교회는 그리스도의 평화는 적대와 폭력이 가시지 않는 곳에 가장 절실하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계속 협력하기로 다짐했다. 미 정부와 의회, 특히 미 정부 관계자들은 사절단의 입장을 경청하면서도 이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대북정책 방향에 관한 것이다. 압박 위주의 대북정책이 효과가 있는가, 북한인권을 북한 내의 인권문제로만 보는 게 타당한가가 쟁점이었다.

그렇지만 만난 미국 내 모든 관계자들이 한국측에 던진 충고는 아프게 다가왔다.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려면 먼저 남북이 화해하고 대화하라.” 워싱턴시의 햇살은 이보다 덜 따가웠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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