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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고흐를 내리고 고갱을 걸자

입력
2016.08.0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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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밝히는 한국불교를 떠나겠다. 기복신앙에 실망한 푸른 눈의 승려, 현각의 선언이 있었다. 기사를 읽은 주말 내내,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했다.

고흐는 그리는 대상과의 호흡을 통해 느낀 감정, 우리 식으로 말하면 흥을 잘 그려낸다. 대상과 함께 길게 호흡하면서 길게 붓질한 ‘별이 빛나는 밤에’는 우리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림이다. 그의 감성을 흥이라고 하면, 아마 이것이 우리 국민이 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고흐 그림은 고갱 것과 함께 보면 도드라진다. 프랑스 남부 마을에 함께 머물던 두 화가는 오래된 공동묘지인 ‘알리스 캉’을 각자 화폭에 담았다. 똑같은 대상을 그렸지만, 두 그림은 전혀 다르다. 고갱은 눈앞의 대상을 상상력을 통해 전혀 다르게 표현했고, 고흐는 대상에서 느낀 즉흥적인 감흥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렸다. 고흐 그림은 현장의 흥을 잘 잡아내는 김홍도 그림과 유사하다. 현장의 흥에 익숙한 고흐는 상상력만으로 그린 그림이 없다. 스스로 이런 고백을 할 정도다. ‘모델 없이는 그릴 수 없어. 색은 … 바꾸면 되지만, 형태는 그게 안 돼.’

유럽 화가들은 대개 고흐보다 고갱에 가깝다. 대상이 아닌 논리적 직관을 따르는 전통 때문이다. 사각형 하나를 그려놓고 그림이라고 우기는 우크라이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런 눈으로 보면 유럽에서 고흐 그림은 돌연한 것이고, 상상력이라는 점에서 보면 세계에서 우리 처지가 그렇다.

많은 사람이 논리와 상상력을 대척점에 놓지만, 사실 논리와 상상력은 동전의 양면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가 아인슈타인이 아니던가. 어떤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힘이 상상력이다. 상상력과 논리적 지성이 긴밀한 관계임은 칸트 도식철학에서도 확인된다. 유의미한 상상력은 논리적 추론이 뒷받침돼야 한다. 과학은 물론 윤리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평등과 자유는 인간 상상력의 소산이다.

안타깝게 우리는 상상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당장 배워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교육, 출세를 위해 학문을 하는 유구한 전통의 교육 역사에 상상력이 깃들 여백은 없어 보인다. 논리적 직관이 중요한 상상력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유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교육은 그래야 따뜻해진다. 이게 안 되면, 지식을 쌓을수록 얼음처럼 차가워진다. 우리 엘리트에게서 조선 선비나 일제 관리의 모습이 반복되는 이유다.

몇 달 전 서울대 교수들의 능력으로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세계 석학들의 평가가 내려졌다. 이는 교수 개인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대학과 우리 사회에 대한 평가다. 창의적 상상력은 그 사회가 형성한 사유의 힘이다. 모든 섬의 아름다움이 물밑 거대한 땅에 의지하는 것처럼, 창의적 상상력은 개인이 아니라 그 사회의 것이다.

기복신앙은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아가 종교만의 문제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식을 교회에 보내는 이유가 자식을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보내는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법 가치를 깊이 생각하라고 자식에게 법을 전공시키는 부모가 몇 명이나 될까. 더 이상 학원이나 학교가 기복신앙을 위한 신전이어서는 안 된다. 그래야 종교도 산다.

아이들을 심심하게 두자. 오감으로 세상을 느끼게 하고 그 과정에서 궁금한 것을 묻게 하자. 스스로 답을 찾을 의지를 북돋우면, 강요하지 않아도 책도 읽고 생각도 한다. 상상력과 도덕심은 거기서 자란다. 신앙이든 지식이든 그것이 단지 대상이어선 곤란하다. 대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흐의 고백은, 슬프지만 우리의 고백이기도 하다. 상상력과 윤리의식이 절실한 시대, 이제 흥을 잠시 거두자. 벽에서 고흐 그림을 떼어내고 고갱 그림을 걸자.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하여.

이상현 한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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