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즐비한 간판과 광고물, 그 속에서 현란한 이미지와 어지러운 문구들이 아우성을 친다. 갈수록 더해 가는 자극의 홍수를 견디는 방법은 외면뿐이다. 이 거리에서 유일하게 나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손바닥 위의 스마트폰, 최신 뉴스와 ‘잼 나는’ 게임은 물론 모든 유익한 정보가 여기 들어 있다. 길을 걷는 동안에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 정도면 ‘스몸비(Smombie)’가 확실하다.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스몸비 족(族)이 늘면서 이들의 시선을 노리는 길바닥 광고도 덩달아 늘고 있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처박고 좀비처럼 거리를 걸어 보았다.
☞스몸비: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친 신조어로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채 걷는 보행자를 일컫는다.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바닥의 스티커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 보니 지나온 횡단보도마다 정사각형부터 길쭉한 배너까지 다양한 형태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대출이나 부동산, 심부름 센터와 중고물품 광고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다른 보행자를 배려하고 교통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앞을 보고 걸으라더니 눈길 닿는 곳에 광고를 슬쩍 들이 미는 건 뭔가. 1일 서울 종로에서 만난 이동통신 대리점 직원 김모(22ㆍ여)씨는 바닥에 광고를 붙이는 이유를 “사람들이 스마트폰 보느라 옆을 잘 안 보고 다니기 때문" 이라며 "잠깐 동안만 붙여도 효과가 꽤 좋다”고 말했다.
대출ㆍ심부름 센터 등 스티커
바닥 향한 행인들 시선 붙잡아
홍대ㆍ대학로선 클럽ㆍ공연 홍보
유흥업소선 길 위에 레이저 쏘기도
홍대 앞이나 대학로엔 클럽 이벤트와 공연을 홍보하는 부착물이 길바닥에 넘친다. 유흥업소 밀집 지역에선 청소년 유해 전단을 일부러 바닥에 뿌려 놓는 경우도 많다. 길 위에 떨어진 만 원짜리 지폐 역시 ‘만원이면 반 마리도 배달해 준다’는 치킨집의 미끼 전단이다. 매트나 카펫을 활용한 깨알 광고도 흔하고 길 위에 레이저를 쏘는 첨단 광고기법에 한참 동안 시선을 빼앗기기도 한다. 바닥에 꽂히는 시선을 잡으려는 부착물 중에는 금연이나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라는 경고문도 적지 않다. 혼잡한 광역버스 정류장에서도 버스번호나 대기선 표시를 바닥에서 확인한다.
사실. 바닥 광고가 생긴 것이 스몸비족 때문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간판이나 건물 외벽 등 어지러운 거리보다 단순하고 깨끗한 길바닥에 붙은 광고가 더 돋보일 수 있다. 한규훈 숙명여대 홍보광고학과교수는 “이미 복잡한 광고로 꽉 차 있는 기존 옥외광고매체에 비해 보도는 무채색의 넓은 평면이므로 여기에 광고를 게시했을 때 주목을 끄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구청선 부착물 제거 쉽지 않아 골치
“길바닥 광고 무분별하게 늘면 결국 외면”
스몸비를 노렸든 아니든 공공장소인 보도 위에 광고물을 부착하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며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관할구청들은 제거조차 쉽지 않은 바닥 부착물이 늘면서 골치를 썩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계속 늘어나는 스티커 광고는 접착력이 워낙 강력해 겉면만 떼어낼 뿐 말끔히 제거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보행자들의 인식도 그다지 좋지 않다. 홍대 앞에서 만난 김도형(27ㆍ남)씨는 “바닥에 광고가 너무 많아 눈이 아플 지경”이라며 “비 오는 날은 젖은 광고지가 토사물처럼 보여 걷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광고매체로서 길바닥이 ‘블루오션’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광고가 무분별하게 늘다 보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할 뿐 아니라 각종 부작용들로 인해 결국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알록달록한 거리를 걷는다. 바닥에 덕지덕지 붙은 부착물의 흔적이 한눈에 들어와 불편했다. 이래저래 눈 둘 곳이 마땅치 않은 세상이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권수진 인턴기자(한양대 철학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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