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정의 뉴욕에서 밥 먹기] '토끼소주' 열풍

한국 소주를 코리안 브랜디로 재현해낸 ‘토끼소주’의 메이커 브랜 힐씨. 김신정 제공

뉴욕의 브루클린에는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라는 위스키, 럼, 그라파(포도 찌꺼기로 만든 브랜디) 등의 증류주를 제조하는 소규모 양조장이 있다. 맨해튼의 빽빽한 건물 숲을 벗어나 한적한 브루클린의 레드후크 지역. 띄엄띄엄 자리잡은 낡은 건물 중 하나인 이 양조장의 허름한 문을 열면 오크 배럴이 늘어서 있고, 다시 ‘테이스팅 룸’이라고 쓰여진 문이 나온다. 문을 열면 펼쳐지는 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옛 멋이 가득한 바에서 위스키, 럼 등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 주말의 한가한 오후, 색다른 뉴욕의 소규모 양조장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효모 제작은 물론 뉴욕주 북부의 농부들에게서 직접 공수한 밀, 호밀, 옥수수 등의 원재료를 사용해 소량의 증류주를 제조하며, 남은 곡물 찌꺼기는 양조장 옆 커뮤니티 텃밭의 퇴비로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술은 대부분 뉴욕 지역에서 판매된다.

최근 이곳은 한국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토끼소주(Tokki Soju)’로 화제가 되고 있다. 집에서 항상 와인을 담그던 친가와 위스키를 직접 만들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술 제조와 문화에 관심이 많던 브랜 힐씨는 친구를 통해 한국 술 문화를 접하고, 한국 전통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한국 술 문화가 항상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음식과 함께 먹는 자리라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가장 대중적인 술인 소주는 대부분이 더 이상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쌀 증류주가 아닌 것을 알고 안타까웠다. 2010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약 1년간 경기대에서 한국 전통주의 역사와 방법을 배우고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뉴욕에 정착해 밴 브런트 스틸하우스의 양조자로 일하며 짬짬이 막걸리, 탁주, 청주, 소주 등 한국 전통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토끼 소주가 뉴욕의 핫 브랜디가 된 것은 브루클린의 모던한식당 ‘굿포크(The Good Fork)’의 김소희 셰프와의 인연 덕분이다. 브랜 힐의 수제 막걸리를 맛본 적 있는 김 셰프는 우연히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힐에게 소주 제조를 문의하며 상업화에 이르게 됐고, 그의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의 결과물인 토끼소주는 올해 2월 출시한 이래 오이지, 정식당, 종로상회 등 뉴욕의 가장 핫한 한식당을 중심으로 꾸준히 발판을 넓히고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레스토랑과 상점이 총 25곳이다. 굿포크의 김셰프가 2015년 말 새로 오픈한 한식당 ‘인사’에는 브랜 힐의 토끼소주와 한식당 인사만을 위해 특별 제작된 인사소주가 공급되고 있다. 이렇게 그가 한국에 있었던 토끼의 해 2011년은 ‘토끼소주’라는 상표로 남게 된 것이다.

토끼소주 인스타그램

위스키, 럼 등 증류주 양조자로서의 전문지식과 기술, 한국 전통주에 대한 이해를 모두 갖춘 그는 한국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누룩과 직접 수소문해 찾아낸 캘리포니아산 유기농 찹쌀로 삼양주(세 차례 담근 곡주 제조법)를 거쳐 한국식 전통 소주를 만들어냈다. 꼭 캘리포니아산 찹쌀까지 찾아야 했냐는 질문에 그는 ‘맵쌀’과 ‘찹쌀’이라는 한글 단어를 써가며 한국식 쌀과 당도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하더니 “설탕이나 다른 첨가물을 넣고 싶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코올도수가 23도임에도 불구하고 토끼소주는 깔끔하고 순한 느낌이고, 입안에 은은한 단맛이 퍼진다. 희석주에 길들여진 입맛에 잠시 혼돈이 온다.

토끼소주 인스타그램

진중한 말투와는 달리 그의 생각은 한국 전통주에 대한 애정과 실험 정신, 도전 정신으로 가득하다. 그가 조용히 말하는 앞으로의 계획 또한 새롭고 흥미롭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토끼소주를 명절 때 한정품으로 소량 출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인삼 등 약재를 사용하는 약주도 만들고 싶고, 탁주, 청주에도 흥미가 있고요. 생막걸리를 출시하는 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시도해 볼 겁니다.” 브랜 힐의 토끼소주병 라벨에는 “달과 함께 마시면 절대 혼자가 아니다”라는 문구와 더불어 토끼가 달 속에 산다고 믿는 한국의 전설이 적혀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만든 한국 전통주, 토끼소주. 멀게만 느껴졌던 한국의 전통주가 참 가까운 곳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김신정 반찬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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