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명의 통장 돈 받고 팔았다는 이유
타인 명의 훔쳐 신용카드 발급했다는 이유
취업 준비생 박모(28)씨는 연초 우연히 받은 문자 한 통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다. 박씨는 본인 명의 통장을 빌려주면 통장 사용료로 매달 2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본인 통장과 함께 인터넷뱅킹에 필요한 공인인증서와 OTP(일회용비밀번호생성기)까지 넘겼다. 두 달 뒤 박씨는 경찰에서 연락을 받은 뒤에야 본인 통장이 대포통장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을 받을 목적으로 통장을 넘긴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된 박씨는 법적 처벌과 함께 곧바로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해당 은행이 법원 판결을 근거로 박씨를 곧바로 한국신용정보원에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직장이 없어 생활비가 궁했던 김모(32)씨는 지난 3월 평소 알고 지내던 친구 이모씨의 신분증을 빼돌려 이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신용카드 모집인에게 신분증만 제시하면 별다른 심사 없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김씨는 새로 발급받은 카드로 1,500만원이 넘는 돈을 대출받고 백화점 등에서 쇼핑을 즐겼다. 뒤늦게 카드 청구서를 받고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이씨는 곧바로 김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씨를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으로 구속했다. 해당 카드사는 김씨에 대한 법적 처벌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법 위반 혐의가 명확한 만큼 한국신용정보원에 김씨를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등록해 줄 것을 요청했다.
1일 금융당국 및 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3월 금융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최장 12년까지 금융거래를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의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된 후 처음으로 5명이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2명은 박씨처럼 본인 통장을 돈을 받고 팔아 넘긴 혐의로, 다른 3명은 김씨처럼 타인 명의를 몰래 빼돌려 불법으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혐의로 등록됐다. 금융범죄자가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등록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낙인 찍히면 사실상 12년간 통장 개설을 비롯해 신용카드 발급, 금융권 대출 등 모든 금융권 거래가 막힌다. 문란자라는 ‘빨간딱지’는 7년간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되지만, 이후에도 5년간은 문란자로 등록됐던 이력이 남아 사실상 정상적인 금융거래를 하기 어렵다. 김씨나 박씨처럼 다른 사람 명의로 불법으로 신용카드를 만들거나 본인 통장을 돈을 받고 넘기는 것을 비롯해 대출사기, 보험사기, 회생파산사기 등을 저질렀을 때에도 금융거래질서 문란자로 등록된다.
제도 도입 후 5개월 가량 동안 문란자 등록이 5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등록자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범죄를 확실히 막기 위해 금융사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금융거래질서 문란자 등록에 나설 것을 독려하고 있다”며 “금융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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