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최대 가해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그제 피해자들에 대한 최종 배상안을 발표하고 배상신청 접수에 들어갔다. 배상안에 따르면 옥시는 성인의 경우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 최대 3억5,000만원(사망 시)을 비롯해 과거ㆍ미래 치료비와 간병비, 사고가 없었을 경우 취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입, 법률 자문비용 등을 지급한다.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영유아와 어린이에겐 미래 수입 추정이 쉽지 않아 위자료를 포함해 총액 10억원을 배상금으로 일괄 책정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 통보인 데다 일부 피해자(정부 조사에서 가습기 살균제에 따른 피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된 1ㆍ2등급)만 포함됐기 때문에 배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진행 중이고 청문회도 예정돼 있는 시기에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 가족을 분열시키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옥시 측이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마지못해 공식 사과와 배상안을 내놓은 데 대한 불신감이 반영된 반발이다.
검찰 수사 결과 옥시는 제품의 안전성 검사를 하지 않고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으며 ‘인체무해’ ‘아이들에게도 안심’ 등의 허위 광고까지 했다. 대학 연구팀을 동원해 조작된 실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우발적 과실에 그치지 않고 악의적이고 반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퍼진 이유다.
옥시 측은 한국 법원이 정한 교통사고나 산업재해 시 위자료 기준액 1억원보다 많이 지급한다는 입장이나, 이번 사건이 수백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 참사인 점을 감안하면 쉬 납득하기 어렵다. 대법원은 기업의 불법행위에 고의나 중과실이 있는 경우, 소비자를 속이거나 증거를 은폐한 경우,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등에는 최대 10억원 이상의 위자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조만간 확정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은 대법원이 논의 중인 위자료 배상액수에도 턱없이 미달하는 셈이다.
3ㆍ4등급 피해자에 대한 배상방안이 빠진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 탓에 각종 질환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지만 직접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낮은 단계(3ㆍ4등급)의 피해자들이 수백 명이다. 이들도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자로 인정해 치료비 등을 지급하는 게 옳다. 옥시는 국정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본사 차원의 사과와 함께 좀 더 성의 있는 배상안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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