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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돈줄 쥐고 대학 통제… 梨大 사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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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돈줄 쥐고 대학 통제… 梨大 사태 불렀다

입력
2016.08.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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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사업 경쟁구도로 바꿔

구조조정 등 일방적 복종 강요

대학은 재정 사업 확보에 혈안

“돈벌이 위해 학문 버렸다” 갈등

대학사회 전방위로 확산 조짐

공권력 성토 성명도 잇달아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본관 출입문 곳곳에 학생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본관 출입문 곳곳에 학생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평단) 설립을 둘러싼 이화여대 학교ㆍ학생간 갈등이 공권력 투입에 이어 학부모와 졸업생, 다른 대학 학생들의 참여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 재정지원사업을 둘러싼 학내 분규가 이처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확대된 것은 교육부가 돈줄을 틀어쥐고 일방적으로 대학의 구조조정과 학제 재편을 압박하면서 대학사회 전반에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일 경찰과 이화여대 측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평단(미래라이프대) 사업에 반대하는 재학생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본관에는 전날 공권력 투입에 반발한 졸업생과 학부모들까지 가세해 700여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지난달 28일 사태 발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다.

학교 측과 공권력을 성토하는 학생들의 성명도 잇따랐다. 지난달 말 카이스트와 고려대, 부산대, 경희대, 동국대, 덕성여대 등의 총학생회가 성명을 낸 데 이어, 이날은 전국 13개 교육대학교가 포함된 전국교육대학생연합과 전국 18개 총학생회가 모인 전국대학총학생회가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일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상황이 악화하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이날 오후 늦게 “평단 설립 일정을 중단하고 학생들과 대화에 나서겠다”며 사태 봉합에 나섰지만, 학생들은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점거 농성을 이어갔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학생들이 본관 출입문 곳곳을 지키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학생들이 본관 출입문 곳곳을 지키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화여대 사태로 표면화하긴 했지만 정부가 주도한 대학 구조조정 작업은 그간 학내 의견 수렴 없이 일방통행 식으로 진행돼 왔고,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 왔다. 역대 최대 재정지원사업으로 알려진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PRIME)사업이 대표적이다. 올해 5월 해당 사업 참여대상으로 선정된 21개 대학에는 올해부터 3년 간 매년 50억~150억원의 예산이 지원된다. 그러나 지난해 초 일찌감치 치고 나간 중앙대도, 학과 개편을 시도한 경희대와 인하대 등도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에 밀려 결국 사업 수주에 실패했다.

반면 이화여대는 정부 재정지원사업들을 싹쓸이했다. 3월 대학 인문역량강화(CORE) 사업을 따내 3년 간 96억원의 정부 예산을 확보한 데 이어 5월에는 연간 50억원 안팎이 지원되는 PRIME 사업 참여 대상으로 뽑혔다. 지난달엔 이번에 문제가 된 평단 사업(연간 30억원가량) 참여가 결정되면서 대학가에선 ‘재정지원사업 3관왕’을 달성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학문을 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재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고, 결국 학내 분규 사태까지 불러일으켰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화여대는 기부금도 많고 등록금도 가장 비싼 편이라 적립금 1, 2위를 다투는 부자 학교이면서도 대학 구조조정에 가장 잘 순응한 셈”이라며 “그나마 이화여대가 서울의 사립명문이라 학생들의 반발 여론이 이슈화하는 거지 형편이 어려운 지방사립대의 경우엔 정부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이 더욱 심했는데도 쟁점화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요구는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200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이 부실화하고 그 여파가 학생에게 피해로 돌아가면 교육당국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선제적 구조조정이 이뤄진 것. 정부는 재정지원사업을 경쟁 구조로 재편하면서 대학들의 복종을 강요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본관 출입문 곳곳에 학생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본관 출입문 곳곳에 학생들이 작성해 붙인 메모가 붙어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등록금을 멋대로 올리기 힘든 상황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돈으로 재정의 15% 안팎을 충당해야 하는 대학 입장에서는 사업을 따내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이유로 학내 조정 과정이나 소통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일단 사업을 따놓고 보자는 경제논리가 팽배했다”고 전했다.

각종 학내 갈등이 불거지자 정부는 ‘구성원 동의’ 항목을 사업 평가지표에 포함시켰지만 그 비중은 미미했다. 조상식 교수는 “예컨대 PRIME 사업의 구성원 동의 점수는 선정 결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고작 3점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학 본연의 가치와 존재 이유보다는 대학을 직업훈련 양성소로 탈바꿈하려는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도 사태를 키웠다. 산업 수요와 관련한 쪽으로만 정부가 재정지원을 집중해 인문ㆍ사회과학과 순수 자연과학 분야가 위축되면서 결과적으로 고등교육의 황폐화가 본격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번 이화여대 사태 역시 “학문적 이론적 연구가 원래 기능인 4년제 대학과 직업훈련 중심인 전문대의 역할 구분을 혼동하면서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거용 상명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부터 취업률을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 지표에 집어넣어놓고 고용 창출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는 동시에 대학 자율성도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대학에, 대학은 구성원들에게 일방적 순응만 강요하는 비(非)민주성이 이번 이화여대 사태의 근본적 원인인 만큼 대학의 자율성부터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노중기 교수는 “대학들을 구조조정으로 몰아붙이는 학령인구 감소 위기는 오히려 진정한 구조개혁을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상식 교수는 “정부 입맛에 맞는 프로젝트형 사업 대신 대학 자율권에 입각해 교부금 형태로 예산을 지원한 뒤 대학이 특성에 맞춰 쓰게 하고 사후 감사하는 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의 동상이 훼손돼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이화여대 학생들이 직장인 대상의 단과대학 설립을 반대하며 서울 서대문 대학 본관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1일 오후 초대총장 김활란 박사의 동상이 훼손돼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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