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 길이와 무게가 최대 2m, 300㎏ 가까이 되는 멧돼지는 원래 초식동물이었으나 잡식성 포유류로 변이된 야행성 동물이다. 도토리를 좋아해 활엽수가 우거진 곳에 주로 서식하는데, 태어난 지 1년 반이 지나면 짝짓기를 해 한번에 많게는 10마리씩 낳는 다산이다. 동의보감에는 멧돼지 고기가 오장을 보하고 풍기(風氣)가 동하지 않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익힐수록 부드러워진다는 고기는 식용으로 쓰이고, 특히 까무러치거나 경기에 걸렸을 때 약용으로 쓰는 쓸개는 최고로 친다.
▦ 멧돼지를 뜻하는 ‘저(猪)’에서 나온 ‘저돌(猪突)’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앞뒤를 가리지 않고 마구 날뛰는 습성은 대책이 없다. 떼지어 민가에 내려와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주고,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에까지 출몰한다. 얼마 전 의정부의 한 식당이 멧돼지가 느닷없이 나타나 휘젓는 바람에 한바탕 아수라장이 됐다. 멧돼지가 뒤집어 놓은 벼는 태풍이 왔을 때와는 달리 복구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고라니와 함께 농작물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야생동물로 악명이 높다. 오죽했으면 그리스 신화에까지 무모함과 저돌성의 상징으로 등장했을까.
▦ 서울시가 환경부 등과 함께 ‘멧돼지는 산으로!’라는 피해방지 시범사업을 시행 중이나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기동 포획단을 강화하고 철제 포획틀, 전기목책 등 차단시설을 설치한다는 것인데, 개체 수가 너무 많아 중과부적이라는 것이다. 피해방지책으로 포획에만 집중하는 것도 문제다. 그래 봐야 극히 일부의 멧돼지를 잡는 것에 불과해 번식이 왕성한 멧돼지를 막을 근본 처방은 되지 못한다.
▦ 멧돼지가 급증한 것은 기본적으로 환경이 변한 탓이다. 산림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이를 구할 수 없다 보니 민가로 내려오기 쉽다. 호랑이 늑대 승냥이 같은 천적이 사라진 것도 큰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일례로 몸에 붙은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진흙에서 뒹구는 특성을 이용, 진흙 웅덩이를 옮기는 것과 같이 서식환경을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개발이다. 우후죽순처럼 들어서는 골프장 리조트 펜션에다 등산로, 산책로까지. 인간이 자연과 가까워지는 것은 좋으나 동물에게는 그만큼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인간이 욕심을 줄이지 않는 한 동물과의 공존이 쉽지 않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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