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독서활성화에 힘쓰고 있는 ‘사랑의책나누기운동본부’와 함께 군부대 방문 북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역한 지 20여년 만에 신병교육대도 가보았다. 내가 거쳤던 논산 육군훈련소와 달리 그곳은 강원 전방지역에 위치해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청춘들의 긴장한 눈빛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바 없었다. 다들 예전의 내 모습이었다. 자다가도 누가 건드리면 관등성명을 외치며 깨는 초긴장의 생활을 적어도 1년은 할 테고, 너무나 분하고 억울해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국가를 수호하는 대신 국가와 국민은 그들을 반드시 지켜줘야 한다.
강당에 모인 그들의 가슴에는 이름 대신 번호표가 붙어있었다. 21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국가에 헌신해야 하는 그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면 좋을까 생각했다. 무대 위에는 ‘군대가 스펙이다.’라는 멋진 구호가 걸려있었다. 내 경우 그건 맞는 말이었다.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군대는 내 정신을 곧게 세워준 좋은 스펙이었다.
행사가 시작되었다. 군부대에서 애국가를 부르면 병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사회에서 부를 때보다 훨씬 가슴 뭉클하다. 클래식 악기 합주가 흐르면 병사들은 한동안 멀리했던 음악의 감성에 젖어든다. 바이올린이 이렇게 가슴을 파고들어 오는 악기인 줄 몰랐다는 고백도 나온다. 그만큼 절절한 심정으로 모든 곡을 듣는다는 말이겠다.
클래식 연주가 끝나고 그날의 메인 행사인 강연이 시작되었다. 강사는 4전5기의 신화로 유명한 홍수환 전 권투선수였다. “내가 세계 챔피언이 된 결정적 이유가 뭔지 아나요? 그건 군인 정신이었어요.” 챔피언이 될 때 그는 군복무 중이었고 일등병이었다. 그날의 경기는 단 한 가지 법칙으로 임했다고 한다. 공 소리가 울리면 달려 나가 주먹을 뻗고, 그러다 공 소리가 울리면 들어와서 쉬는 일만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승자가 되어 있었다. 강당에 있는 훈련병들이 딱 그 심정이리라. 앞으로 21개월 동안 하루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 고된 날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넘어서다 보면 인생의 큰 과제들도 의연하게 마주할 힘이 생길 것이다. 병사들은 마치 자기 인생에 응원하듯 강사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나는 무대 뒤편에서 ‘링보다 인생이 더 무섭더라’는 강사의 이야기를 가슴에 새겼다.
잔뜩 긴장하고 강연을 들은 병사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환호를 보냈다. 주관 단체에서 준비한 선물을 주기 위해, 가장 먼 곳에서 온 병사들 몇 명을 무대 위로 초청했다. 네 명이 제주도에서, 마지막 한 명은 미국에서 왔다. 인터뷰 진행을 하던 나는 다시 가슴이 뜨거워졌다. 대한민국은 이런 힘으로 유지되고 커가는구나. 병사들이 끝없이 앙코르를 외쳐대는 바람에 여가수들이 예정보다 많은 노래를 불렀지만 가수들은 힘든 줄 몰랐다. 홍수환 선수의 강연은 어떤 병사에게는 평생에 걸쳐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될지도 모른다. 네 번이나 다운되고 나서도 기필코 KO승을 거두어야 하는 때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올 테니 말이다.
행사가 다 끝나고 여러 명의 훈련병이 내게로 왔다. 20여년 전 나름 모진 군 생활을 했던 선배로서 진심 어린 응원을 해주었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는 부끄러워 못했던 각자의 다짐도 얘기했다. 견디기 힘든 일이 닥쳐올 때면 책 속의 좋은 구절을 외우면서 이겨내 보겠다고 말하는 병사도 있었다. 이래서 군부대에 책 한 권 보내는 일이 귀하고, 찾아가는 일도 귀하다. 모두 건강하게 부모님 곁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다짐을 하며 우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그들은 정문을 나서는 우리 일행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부디 약속한 대로 건강하게 가족 곁으로 돌아가기를. 그것보다 더 큰 애국의 길이 당장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제갈인철 북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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