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 아래서. 태양이여, 내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해주세요. 이민국에 드러나지 않게. 난 당신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어요. 당신의 입맞춤과 사랑을 기다리면서. 난 혼자가 됐어요. 사막을 떠도는 도망자처럼 난 가고 있어요. 며칠 몇 주 몇 달이 지나고. 당신에게서 멀어지고 있어요. 당신을 내 곁에 가까이 둘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일 때문에 시간이 힘들지만. 난 당신의 웃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당신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의미가 없어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 멕시코계 미국인 여성가수 티시 이노호사가 통기타를 치며 스페인어로 불렀던 노래 ‘돈데 보이(Donde Voy)’는 가사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애절한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멕시코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의 처절한 삶과 애환, 고국에 남겨둔 연인을 그리워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담고 있다. 1989년 앨범 ‘홈랜드‘ 에 수록된 이 노래는 1990년 방영된 MBC 드라마 ‘배반의 장미’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 4개 미국 주와 6개 멕시코 주에 접한 미국-멕시코 국경은 전장 3,141㎞로 한반도 휴전선(250㎞)의 12배를 넘는다. 이 중 3분의 1에 달하는 1,000여㎞에 이미 높이 9~16m의 장벽이 설치되어있다. 양국 국경지대엔 치와와, 소노라 등 한반도 5배 크기의 사막이 있다. 폭염과 40도가 넘는 일교차에 독사 전갈 독거미가 득실거리는 사막에서 죽어가는 불법 이민자만 매년 400여명에 이른다. 수십 년간 1만명 이상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오죽하면 멕시코 정부에서 월경 안내서까지 배포했을까.
▦ 미국 국경을 넘는 불법 이민자는 10년 전 120만명에서 지난해에는 33만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가 국경에 높은 장벽을 추가로 쌓아 불법이민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이후 미국행을 서두르는 불법이민이 늘고 있다. 최근 국경을 넘다 붙잡힌 이민자들도 평소보다 30%가까이 늘었다. 그런데 남의 나라 일만 같지는 않다. 18세 북한 수학 영재의 탈북, 중국 공장에 파견된 북한 여성 8명 집단 탈출 뉴스가 ‘돈데 보이’에 오버랩 되는 것은 나뿐일까.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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