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런던올림픽 3ㆍ4위전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을 누르고 사상 첫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일본은 그보다 한참 전인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 당대 최고의 공격수라 불린 가마모토 구니시게(72)를 앞세워 아시아 최초로 이미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 티켓을 놓고 일본과 치열하게 다퉜던 아시아 최종예선을 생각하면 아쉽다. 김기복(72) 한국실업축구연맹 부회장이 종료직전 날린 회심의 중거리 슛이 크로스바에 맞지 않았더라면 두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을지 모른다.
한국과 일본, 자유중국(대만), 베트남, 레바논, 필리핀이 아시아 최종예선 풀리그를 벌여 1위만 멕시코로 갈 수 있었다. 일본이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축구에 대대적인 투자를 했다. 경기 장소가 도쿄로 정해진 것도 일본의 입김이라는 분석이었다. 한국대표팀 멤버였던 김기복 부회장은 “도쿄에 도착해 호텔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일본 사람들이 죄다 손가락 세 개를 흔들었다. 일본이 3-0으로 이긴다는 뜻이었다. 그 정도로 자신감이 대단했다”고 기억했다.
1967년 한국과 일본은 나란히 3연승을 거두고 4차전에서 맞붙었다. 한국은 반드시 이겨야 하고 일본은 비겨도 느긋한 입장이었다. 일본은 그 전에 필리핀을 15-0으로 이겨 골득실이 +21, 한국은 +7이었다. 마지막 대진은 한국-필리핀, 일본-베트남. 한국이 일본과 승점이 같다면 일본이 최종전에서 베트남을 이긴다고 가정할 때 한국은 필리핀을 15골 차 이상으로 눌러야 1위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강했다. 전반에 잇따라 골을 내줬다. 김 부회장은 “진짜 3-0으로 지나 싶어서 아찔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한국도 주저앉지 않았다. 이회택과 허윤정의 골이 터져 동점을 만들었다. 다시 가마모토의 세 번째 골. 그리고 2분 뒤 다시 허윤정의 동점골. 3-3에서 전광판 시계가 멎을 무렵, 올드 팬들이 잊지 못하는 통한의 크로스바 슛이 나온다.
김기복 부회장은 “3-3이면 지는 거나 마찬가지여서 결사적으로 공격에 나섰다. 이회택이 치고 나가는 걸 일본 수비가 막았는데 볼이 내 앞으로 흘렀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이미 45분이 지났다. 바로 옆 심판이 휘슬을 입에 막 갖다 대려고 했다”며 “더 이상 드리블 하면 그대로 휘슬을 불어버릴 것 같아 냅다 때렸다”고 말했다. 공은 빨랫줄처럼 날았지만 골대를 강타한 뒤 튀어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울린 종료 휘슬. 한국은 최종전에서 극단적인 수비로 나온 필리핀을 상대로 5-0으로 이겼지만 일본이 베트남을 1-0으로 잡으면서 멕시코행 티켓은 일본의 차지가 됐다. 이듬해 일본은 멕시코시티에서 3위에 올라 열도 전역을 흥분에 빠트렸다.
한국과 일본은 리우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한다. 이번에는 과연 어느 팀이 아시아의 맹주다운 위력을 보여줄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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