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황지연못 그리고 관광지가 된 태백 탄광의 현장에서 최근 시간을 보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두 곳이지만 한반도 젖줄의 발원지와 한국경제의 에너지원이 모두 태백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태백은 10여 년 전 산업유산 보존과 활용을 위해 빈번히 다녔던 곳이다. 철암탄광역사촌 만들기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후 오랜만이었다.
그러나 태백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아 보였다. 동원 사북광업소에는 마지막 날의 모습이 남아있는 듯 했고, ‘태양의 후예’ 촬영장으로 유명세를 탄 ‘삼탄아트마인’은 산업유산 활용의 모범답안 같은 모습이었으며, 철암탄광역사촌은 삶의 현장에서 태백의 역사를 전달하고 했지만, 왠지 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근대산업유산으로 지역을 재생시킬 수 있다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노력이 있었는데 결과가 이것뿐인가 싶었다. 좀 더 정확히는 우리 능력이 이 정도였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한국의 에너지원이었던 태백이 큰 홍역을 겪었다. 빠르게 진행된 산업합리화정책은 1970년대 ‘지나가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했던 탄광촌의 풍경을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이때 독일 루르(Ruhr)의 지역재생프로젝트가 소개되면서 탄광 폐쇄에 따른 보상에 집중되었던 정책이 재생으로 바뀌었다.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루르공업지대는 독일의 최대 석탄생산지로 한국경제의 초석이 된 파독 광부들이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석탄산업이 80년대에 쇠락하면서 경제가 붕괴된 이곳을 살린 것은 ‘IBA 앰셔-파크 프로젝트’였다. 1989년부터 10년에 걸쳐 3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예산이 지원되었다. 그리고 민관 합동으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를 실천에 옮긴 결과 2010년에 유럽연합(EU)의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태백을 돌아보면서 잊고 있던 루르가 생각났다. 2002년 철암역의 선탄 시설이 근대산업유산으로는 처음 등록문화재 21호가 되었다. 국내 최초의 선탄 시설로 경제 성장의 에너지원이었던 곳이 지역 재생의 새로운 출발점이었으면 하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루르처럼 말이다.
많은 건축가들이 태백을 찾았고, 지역 활동가와 함께 많은 제안과 실천이 이어졌다. 지금의 모습이 그 결과다. 그런데 허전하다. 무엇이 태백을 루르와 다르게 만든 것일까? 석탄 산업이 쇠락한 자리를 역사와 문화로 되살리겠다는 의지는 같았는데. 현지의 오랜 친구 말이 귓가에 맴돈다. ‘지역 재생을 표방했지만 지역 주민은 한번 이상 찾지 않는다.’ 태백의 현실을 잘 표현해준 말이다. 주민이 없는 산업유산이 생명력을 갖고 외지인을 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외형상 유사한 조건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태백의 산업유산은 이대로 버려질 수 없고, 태백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이대로 잊혀질 수 없는 곳이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