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골목에 사는 후배가 남자친구와 북유럽으로 휴가를 갔다. 몇 시간 전 도착한 문학잡지에는 젊은 소설가의 ‘겨울잠’이라는 단편이 실렸는데, 주인공 남자가 진정한 삶을 위해 북유럽으로 겨울잠을 자러 간다는 내용이다. 가보지 못한 곳은 늘 낭만적으로 느껴지는데, 하물며 빙하가 있는 곳이라니! 동네 후배는 이삼 년 전에도 피오르 해안에서 찍은 사진을 현장에서 전송해준 적이 있다. 여행을 많이 하는 그녀의 한쪽 벽면에는 여러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이 빼곡 붙어 있다. 때때로 나는 그 사진을 보며 답답함을 느끼곤 했다. 탁 트인 바다나 넓은 초원, 손에 닿을 듯한 구름, 곶, 해안선, 지평선 등이 가둬놓은 풍경이라 느껴지기 때문. 근사한 풍경 뒤에 있을 허름한 농가와 밋밋한 야산, 아이들, 세찬 바람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중에 자주 옆길로 빠지곤 했다. 후배는 휴가를 갈 때마다 내게 부탁하는 게 있는데, 집이 비었음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르도록 대문에 꽂혀 있는 우편물을 마당 안으로 던져달라는 것이다. 지나가다 들렀을 때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착각인가 하고 돌아오려고 할 때 다시 안에 누가 있는 듯한 기척. 살그머니 들여다보니 어미와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를 당최 좋아하지 않는 그 집에서 몸을 푼 미욱한 어미는 영양실조로 갈비뼈가 칼처럼 드러난 새끼 한 마리만을 건사하고 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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