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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애가를 불렀던 예레미야를 생각한다

입력
2016.07.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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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하루를 맞는 8월, 무엇보다 광복의 기쁨을 노래하고 70여년간의 성장과 번영을 구가하며 이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도리다. 그러나 국내외의 상황은 유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했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기쁨의 노래 대신 애가(哀歌)를, 희망 대신 절망을 감추지 못한다. 이 비운의 예언자를 불러내는 것은 그 시대만큼 오늘날 국내외의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이것은 성경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경고하는 구절이다. 예언자의 이 말은 서남쪽의 이집트와 동북쪽의 바빌로니아 틈바구니에서 양국의 눈치를 보아오던 자기 조국 유다가 신흥대국 바빌로니아의 침략으로 그 멸망이 목전에 다다랐을 때 경고한 예언이다.

이 비극적인 예언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예루살렘의 그 화려했던 거리는 폐허로 변했다. 바빌로니아는 세 차례나 침략하여 유다를 초토화시켰다. 나는 이 예언자의 소리가 나라의 절박한 위기를 맞아 무엇보다 안보의 방안을 앞서 도모해야 할 시기에 나타났음에 주목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무기를 비축하고 국방력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논해야 할 판국이었다. 그러나 예언자는 국방의 요체가 무기와 병력에 있기보다는 그 사회의 ‘정의와 진리’에 있음을 천명했다. 예언자는 허약해지고 있던 유다 나라 멸망의 원인이 사회적 불의와 부패, 사이비를 정론인양 외치며 정의와 약자를 무시해버리는 언론의 몰지각함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부패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었던 분에게까지도 법의 잣대를 추상같이 들이대면서 그를 자살로 몰아넣었던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전세난으로 나라가 온통 난리를 치고 있을 때 백수십채를 보유하고 그것을 치부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가 권력 앞에서 취했던 ‘사회정의의 당당함’을 자신에게도 내면화했다면 그렇게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초임 시절 몇 천원의 사익(私益)도 사회정의에 반한다는 소신으로 이를 용납하지 않고 법의 심판을 받게 했던 그 부장검사는 직위를 이용하여 그 몇만 배를 취하고도 들통나기까지는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들을 감독해야 할 정부는 이를 개인적 일탈로 치부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기에 급급했고, 지금도 부패혐의가 있는 고위공직자는 권력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이런 분위기에서 생산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김영란법’이 그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은 일말의 희망이다.

국방의 요체가 정의와 진리에 있다고 외친 예레미야는 나라가 위급하게 된 원인을 사회구성 요인을 통해 더 진단했다. 그는 자기 시대를 잘못 이끌고 있는 지도자들과 거기에 편승하여 비판 없이 따르는 민중을 함께 질타했다. 당시 유다 사회의 부패는 정론의 추상같음을 내팽개친 언론과 거기에 부화뇌동하는 민중들, 뇌물 앞에 눈먼 공직사회가 그 텃밭이 되었다.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예레미야는 유다 사회를 예언자들로 상징되는 지성인들, 거짓 진리를 말하고 권력으로 다스리는 종교지도자들, 거짓에 물들어서 그들 거짓 지도자들을 콘크리트 같이 지지하던 민중들의 구성체로 인식했고, 거기에 유다 멸망의 원인이 있다고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핵무기에 대처하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여론은 분열되고 있다. 예레미야는 안보의 요체가 무력보다는 인간에게 있다고 직시했다. 정의와 진리로 이끄는 지도자와 거기에 소통하는 민중들이 있을 때 그것이 안보의 관건이다. 그러나 아무리 방대·정교한 무기체계를 갖춘다 하더라도 그 사회가 정의와 진리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국가안보는 담보될 수 없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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