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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영란법과 두 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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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김영란법과 두 개의 기억

입력
2016.07.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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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몇 해 전 소설가 이호철 선생의 초대로 고양시 선유동의 이 선생 집필실에서 열린 단편소설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다. 집필실까지 가는 길은 어렵진 않았으나 교통이 편리한 곳은 아니었다. 나는 인근의 전철역에서 동료와 함께 다른 사람의 승용차를 얻어 탔다. 행사는 차양이 처진 마당에 참석자들이 둘러 앉아 소설을 읽고 서평을 들으며 서로 얘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행사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김영란 대법관이 남편인 강지원 변호사와 함께 도착했다. 가만히 자리에 앉으려는 부부를 이호철 선생께서 굳이 일으켜 소개하시자, 어쩔 수 없이 김 대법관이 인사말을 했다. 김 대법관은 먼저, 마을버스를 타고 행사장을 찾아오느라 늦게 도착하게 됐다며 다른 참석자의 양해를 구했다. 그 인사말의 첫 부분은 평화스러운 그 날의 전경과 함께 내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적어도 그 때의 우리나라는 전철과 마을버스를 타고 소설가의 강독회에 오는 대법관을 가진 국가였다.

2012년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인 김영란 대법관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시민들의 민원을 다루는 그 기관의 업무 특성상 김 대법관은 공공 부분에서 일어나는 부정행위와 금품 수수의 다양한 행태를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많은 수가 처벌받지 않는다는 점에 놀랐을 거라고 짐작했다(이런 부조리의 중심에는 항상 법조계가 있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법률의 적용 대상이 넓혀진 것은 조금 의아했지만 대학 교원에 국한해서 얘기하면, 해당 직종의 공공성과 사회적 영향력에 비춰 볼 때 국회의 결론이 터무니없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김영란 대법관에 대한 두 번째 기억은 작년 봄 우리 학교 공익인권법학회가 연 특강 때의 것이다. 당시 학회는 이웃 로스쿨 석좌교수인 김 대법관을 초청해 강연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고, 내가 그 소개를 맡게 됐다. 조금 일찍 간 강의실에서 나는 학회 대표의 옆에 종이 가방이 놓인 걸 발견하고 그 내용물이 무엇인지 물었다. 학회 대표는 김 대법관이 강연료를 극구 사양해서 학교 기념품을 대신 준비했다고 답했다. 그 직후 김 대법관이 도착하고 나는 짧은 소개를 하고선 강의실을 나왔다. 그 날의 강연 내용은 로스쿨 학생들의 법학 공부 방법과 마음가짐 등에 관한 것이었지만, 아마도 그 행사를 준비한 학생들은 김 대법관과의 만남에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직자의 인품이 훌륭해서 그 말을 경청하거나 만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공직자와 함께 밥을 먹고 즐거운 낯으로 대화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국가 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와 나쁜 관계를 맺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직자가 자신과 생각을 같이 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뜻에 맞춰 법제도가 운영되기를 희망한다. 즉 사람들은 그 뒤에 국가가 있다는 걸 의식하고 공직자를 대한다. 따라서 공직자가 좋은 음식을 즐길 때,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일반 시민은 자신의 뜻을 전달할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절망하게 된다. 반대로 공직자가 소박한 생활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정치 체제는 조금 더 민주적이고 정의로울 수 있다.

직업으로서 ‘공직’은 소박한 삶의 방식을 전제한다. 법조인에 관한 한승헌 변호사의 표현을 빌려 설명하면, 우리나라에서 공직은 가난을 면하긴 쉽고 부유해지긴 어려운 직업이다. 소박한 밥상을 즐기고 비싼 선물보다 정성 들여 마련한 선물에 기뻐할 때, 공직자의 삶은 더 여유롭고 떳떳하다. 많은 공직자들이 실제 그렇게 산다. 지난주 합헌 결정을 얻은 김영란법은 그런 삶을 추구하는 공직자들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공직 사회에서 더 떳떳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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