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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동료’가 리우의 ‘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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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3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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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맞붙은 구본길(왼쪽)과 김정환. 연합뉴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맞붙은 구본길(왼쪽)과 김정환. 연합뉴스

런던의 동료가 리우의 적이 됐다.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의 김정환(33ㆍ국민체육진흥공단)과 구본길(27ㆍ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둘은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합작했다. 하지만 리우올림픽에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없다. 펜싱은 플뢰레, 에페, 사브르에서 남녀 개인과 단체 등 총 12개 종목으로 나뉘는데 올림픽에는 남녀 한 종목씩 단체전을 돌아가며 쉬기 때문에 10개의 금메달만 걸려 있다. 이번에는 남자 사브르와 여자 플뢰레 단체가 빠진다. 김정환과 구본길은 개인전 금메달을 두고 서로에게 검을 겨눠야 한다.

둘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인전 결승에서 한 차례 맞붙었다. 동생 구본길의 15-13 승리였다. 하지만 올해 페이스는 김정환이 더 좋다. 김정환은 지난 5월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 그랑프리 펜싱선수권대회에서 유럽과 중국의 쟁쟁한 실력자들을 모조리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앞서 4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2관왕을 차지하는 등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다. 현재 세계랭킹 2위다.

구본길은 잠시 주춤했다. 최근 국제무대에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하며 한때 1위였던 세계랭킹이 4위까지 떨어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부쩍 부담이 커진데다 상대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은 탓이다. 하지만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이효근(49) 펜싱대표팀 코치는 “실력이 없어서 지는 것이 아니다. 심적 압박 때문이다. 훈련 때는 괜찮은데 경기를 하면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구본길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다. 훈련으로 극복해야 한다. 심적인 부분은 마인드컨트롤과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구본길(오른쪽)과 은메달을 딴 김정환이 시상대에서 함께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구본길(오른쪽)과 은메달을 딴 김정환이 시상대에서 함께 기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정환과 구본길은 걸어온 길이 조금 다르다. 구본길은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검을 잡아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다. 2006년 세계유소년선수권, 2008년 세계청소년선수권 정상에 오르며 단기간에 유망주로 주목 받았다. 열아홉에 태극마크를 달아 2011년 세계선수권 동메달을 땄다. 리우올림픽 한국 선수단의 개회식 기수로 선정될 정도로 훤칠한 키(182cm)에 유연성과 강한 힘까지 삼박자를 갖췄다. 4년 전 런던에서 단체전은 우승했지만 개인전은 16강에서 탈락해 기대에 못 미쳤는데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남자펜싱 대표팀의 ‘맏형’ 김정환은 대기만성형에 가깝다. 벌써 국가대표 11년차. 스스로도 “선수로서 가슴 아픈 순간들도 있었다. 후보로 머물렀던 시간들이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서른을 넘어서도 꾸준히 기량 향상을 거듭하고 있다. 후배들에 비해 몸놀림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노련함을 바탕으로 한 정확한 판단력으로 상대 허를 찌른다.

리우에서는 금메달을 놓고 다투게 됐지만 같은 소속 팀이기도 한 둘은 평소 아주 친하다. 구본길이 멘토로 삼고 있는 선배가 김정환이기도 하다. 하지만 승부 앞에 잠시 우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구본길은 “단체전이 있을 때는 딸 수 있는 메달이 두 개였지만 이제는 하나로 줄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메달을 거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입술을 깨물었다. 김정환 역시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나서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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