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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깨 옮길 고랑 긁는데... 오전 9시 지나자 비 대신 땀이 주르륵

입력
2016.07.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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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경운기를 이용해 들깨 밭을 갈고 있다. 땀 때문에 셔츠는 금새 시스루가 되고 머리에 두른 수건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회색과 푸른 빛이 섞인 5시에 집을 나섰다. 새벽 가로등은 꺼질 만도 한데 퇴근 준비하며 눈치 보는 쫄다구처럼 연신 깜빡거렸다. 밤새 시달린 하현달도 누렇게 산성봉에 내려 앉고 있었다. 지라고 별 수 있었겠나. 열대야에 돌아다니느라고 힘들긴 나와 마찬가지였겠지.

“형님, 어쩌케 더워서 잠도 안 오실틴디 당구나 한 게임 하끼다(할까요)?” 전날 밤, D동생의 정중한 제안에 읍내 밤거리로 나섰다. 평소 9시만 넘으면 한적해지는 거리에 사람들이 꽤나 돌아다닌다. 에어컨이 없거나 있어도 켜기 겁나서 필터 관리만 잘하는 사람들이다. 식당하는 P도 설거지 마치고 합세해 셋이서 새로 생겼다는 당구장에 들어섰다.

밝고 시원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침침하고 갑갑하다. 사람은 몇 안 되는데 뭔가 꽉 찬 느낌이다. 영화에서 보던 ‘덩어리’들이 많았다. 의도치 않은 게 분명한 쫄티 차림들이다. 기억났다. 당구장 사장이 씨름선수 출신이라고 들었다. 같은 이력을 가진 사람들인가 보다. 기럭지는 몰라도 어깨 넓이는 자신 있었는데 이상하게 쪼그라들었다. 그 중 하나가 날 보고 “행님! 어쩐 일이신가요” 인사해 주고 나서야 호흡이 좀 틔었다. 하지만 한 번 졸아든 신경과 근육은 회복이 더뎠고, 게임비와 술값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태느라 피곤은 더했다.

농민들이 드론을 이용한 논 방제를 하고 있다. 농촌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공동방제 대안으로 드론이 상용화 추세에 있다.

아르바이트 사흘째.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한 감나무 현황을 파악하러 돌아다니는 일이다. 10시만 넘어도 복날 견공처럼 혀를 내밀고 다녀야 하니 가능한 한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5시 반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다. 장터 입구를 지나는데 횡단보도 위로 지팡이마냥 허리가 휜 할머니가 보였다. 속도를 늦췄다. 당신 덩치보다 큰 고구마줄거리 더미를 유모차에 싣고 고개를 숙인 채 혼신의 힘을 다해 최고 속도를 내시는 듯 했다. 가능하다면 뛰고 싶은 심정이 보인다. 장날 정자 아래 좋은 자리를 잡으시려나 보다. 집에서부터 걸어 오셨을 테니 4시 전에는 출발하셨을 거다. 눈가에 남은 피곤이 창피하다.

약속 장소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만나기로 한 형님이다. “어이 동생, 오늘은 아무래도 일이 힘들겄네. 미안해서 어쩌까.” 사정이 생겨 작업을 미루자는 전화였다. 그런 전화를 왜 약속시간 10분 전에 해야 하는 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형님은 평소에도 “지역사회에 살믄서 너무 따지고 그러믄 못써”를 자주 얘기하던 사람이다. 따지지 않았다. 아까 그 할머니나 장터까지 모셔다 드릴 걸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그냥 농장으로 핸들을 틀었다. 트럭 소리에 집에서 튀어나온 희동이가 놀란 표정이다. 아침인데도 헐떡거리는 걸 보면 얘도 밤이 힘들었나 보다. ‘이 사람이 아직 나타날 시간이 아닌데’ 하는 눈으로 잠시 보다가 껑충거리더니 남은 밥을 흡입했다. 희동이는 저녁에 주고 간 사료를 항상 조금씩 남겨 뒀다가 내가 나타나면 그제서야 비운다. 항상 뒷 일을 대비하는 셈이다. 종자를 준비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농부의 개로서 손색이 없다.

장화로 갈아 신고 들깨 밭을 살폈다. 전날 오봉댁어머니가 뽑아 주신 들깨 모종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제 심은 들깨는 그럭저럭 밤을 잘 보냈나 보다. 엊저녁보다 조금 더 짱짱한 모습이다. 흙은 바짝 말라 발 딛는 곳마다 먼지가 올라왔다. 들깨를 옮길 고랑을 쟁기로 긁고 물을 주고 흙을 돋아 세운 후 다시 물을 주는 식으로 작업이 이어졌다. 어르신들 말씀으로 ‘꼽꼽하다’ 싶게 물기가 있으면 생략해도 되는 과정이 추가되는 셈이다. 비 소식은 중부지방까지만 내려왔고, 남부지방에는 그 쪽도 속은 거라는 얘기만 들렸다.

볕에 토란 잎이 타 들어가고 있다. 남부지방은 장마 강수량 부족으로 가뭄을 겪고 있다.

9시가 지나자 비 대신 주르륵 땀이 내렸다. 머리에는 일제시대 인력거꾼처럼 간신히 수건을 동여맸지만 유효시간 30분짜리 조치에 불과했다. 10시에 농막으로 후퇴했다. 윗도리를 벗어 빨고, 등목 식으로 물을 뿌려가며 몸을 식혔다. 선풍기 앞에 서서 스위치를 눌렀다. ‘강풍’을 눌렀는데 바람은 그대로고 소리만 강해진다. 나름대로 애는 쓰는데 힘만 들지 별로 소용없는 모습이 이 역시 농부의 선풍기로 손색이 없다.

숨을 고르고 라디오를 틀었다. 지난 겨울 ‘돌발성 난청’이라는 초면의 질병을 앓고 나서는 이어폰을 멀리 했다. 조용히 밭 작업하면서 듣던 라디오를 이제는 농막에서 시간을 내야 들을 수 있는 게 아쉽다. 한 어머니의 사연이 나왔다. “기말고사 보느라고 최선을 다한 우리 딸, 며칠 푹 쉬면 좋겠다”는 언뜻 따스한 얘기였다. 하지만 더위 때문에 달팽이관이 더 꼬였는지 곱게 들리지 않았다. 최선은 왜 꼭 다 해야 하는지, 최선의 반쯤 한 것 같다고 하면 불성실하고 못 된 사람이 되는지 억울했다. 물론 항상 먹을 때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때, 다른 것도 그렇게 다 열심히 하면 좋겠다 싶지만 중복 날 대낮에 삽질하듯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며칠 푹 쉬면 좋겠다’는 말도 ‘며칠만 쉬고 방학 내내 고생하자” 하는 말로 들렸다.

DJ는 또 다른 사연을 읽었다. “휴가 가시게 됐군요. 축하 드립니다~” 휴가가 무슨 복권 당첨이라도 되나. “열심히 일한 자여. 떠나라” 하던 광고 문구가 회사를 떠나라는 말이 된 시대를 살고 있지만 1년에 1주일 쉬는 걸 축하 받아야 하는 삶도 농막 선풍기만큼이나 뻑뻑하다.

몸도 좀 식고 땀도 말랐지만 창 밖 햇살엔 살(煞) 기운이 가득해 보였다. 나갈 엄두를 내지 않기로 했다. 눈을 돌리니 저 아래 논에 방제작업을 하는 농부와 경운기가 보였다. 농사 잘 짓기로 소문난 조씨아저씨 부부다. 농막의 나는 ‘어쨌든지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고 논 한가운데 농부는 “나는 죽어도 작물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농부라면 후자의 생각이 마땅하지만 나는 일단 내가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 강했다. 눈길을 거뒀다.

햇볕에 드러난 감이 화상을 입어 불에 데인 모습을 하고 있다. 남부지방은 장마 강수량 부족으로 가뭄을 겪고 있다.

신문을 펴는데 어젯밤 치킨이 소식을 보내왔다. 힘을 빼고 가스부터 천천히 내보내는데 우당탕 한강변 불꽃놀이 소리가 났다. 화장실로 향했다. 아내 말이 생각났다. “유헌씨도 똥마려우면 엉덩이에 소름 돋아?” 확인해 보니 나도 그랬다. 편해진 속으로 신문을 살피니 막장 드라마 치고도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드는 전자렌지를 욕보이고, 잘 나가던 검사들은 칼 물고 물 뿜던 망나니 꼴이다. 그 검사들이 해먹었다는 만큼도 안 되는 돈에 소녀상 운명은 위태롭고, 김영란 때문에 기자들은 목탁 두드리기 힘들다고 난리다. 이 사람들도 아마 더워서 그러는 것 같다. 이제는 내가 기자도 아니니 김영란법이 언론계 종사자 식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 없고, 해쳐먹는 검사 판사들은 앞으로도 꾸준할 테니 그냥 지켜보는 수 밖에.

하지만 내 코가 석자라서가 아니라 정말 큰 일 날 일이 있는데 사람들 관심이 없어서 더 걱정인 게 있다. 바로 GMO,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다. 수입 농산물이나 식재료에 GMO가 들어있는지 아닌지 정도가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가 대표적인 GMO 생산국이 될 판이다.

최근 접한 소식에는 농촌진흥청이 2년 전부터 익산, 전주, 완주에서 GM벼와 콩 등의 시험재배를 승인했다고 한다. GMO하면 미국이 대표적인 나라인데, 그 나라에서 조차 주식인 밀은 GM재배와 판매, 소비를 금하고 있다. 미국 몬산토 같은 대형 종자회사가 개발한 GM쌀이 수입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던 차에, 우리나라 농업의 브레인이라고 할 농촌진흥청이 ‘GM개발사업단’을 꾸려 벼 뿐만 아니라 고추, 배추, 마늘, 콩, 감자 등 17개 작물 133종을 개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GMO 개발에 내세우는 명분은 농업경쟁력 확보이다. 이 곳의 한 연구관은 “삼성 같은 대기업이 종자 기술 개발에 투자해 대량 경작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기후 변화, 식량 위기 시대에 GM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보다 지금 현대인들의 뇌 크기가 작아졌다고 하는데 믿기 어려웠지만 점점 믿게 된다. 농사로 대 기업 총수 화대를 챙겨주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다. 토종 종자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전 국토를 하나의 논배미, 하나의 밭두둑으로 만들어서 쉽게 농사 지을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큰 오산이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기근과, 종자 대기업의 세계적 횡포에 쓰러지는 각국 농업만 봐도 그 피해는 회복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촌지능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희동이만도 못한…...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내가 이름을 불러야 꽃이 된다는 자연에 대한 오만이 걱정이다. 농사가 시작된 1만년의 시간은 인류 전체의 역사 중 아주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농사는 그 짧은 시간에 인류의 숫자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놨지만 그 숫자가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그것보다 더 짧은 시간에 가능할 수도 있다.

국토종주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더위에 지쳐 구례 읍내 차도 옆에서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걱정이 체온을 올린다는 걸 알았다. 생각할수록 더웠다. 일단 나서서 움직이는 게 낫겠다 싶어 구 이장님댁으로 놀러 갔다. “어서 오씨요” 오봉댁어머니가 신발도 안 신고 흙 범벅인 양말바람으로 맞아 주셨다. 금방 밭일을 마치신 모양이다. “어쩐 일이시래요?” 하시는데 딱히 이유도 없고 드릴 말씀도 없어 머뭇거리니 “들어오씨요. 포도 있응게 좀 잡숫고 가요” 하신다. 마지 못한 듯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에어컨도 켜 주시고 선풍기도 돌리셨다. “아버님은요?” 하는데 마침 들어오셨다.

“옛날엔 섬진강으로 노고단으로 놀러 다녔는디……” 남들이 들으면 맨날 물놀이 하러 다니신 줄 알 거다. 어쩌다 1년에 한 번 마을사람들과 다녀오신 얘기를 요맘때면 즐겨 하신다. “솥 단지 이고 장작 들고 노고단에서 갈치 지져 묵고 내려왔어. 좋았네~” 어머니들은 한복에 고무신 신고 노고단도 가고 섬진강 모래 찜질도 하셨단다. “한복은 왜요?” “좋은 날잉게~” 또 웃으신다. 말씀만 들어도 시원하다.

이 여름, 한우가 한숨 짓고 굴비가 비명을 지른다고들 한다. 사람끼리의 일을 사람이 결정하면서 왜 괴로운 사람들만 늘어나는지 모르겠다. 더위가 식으면 걱정도 식으려나. 걱정만 식으면 문제가 해결되려나. 어쩌면 그러길 바라는 사람들, 올림픽 금메달에 모두 묻혀버리길 절실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까봐 걱정이다. 속이 불편하다. 에이, 또 엉덩이에 소름 돋는다.

前 한국일보 기자 cameragag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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