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네덜란드인’ 등을 뜻하는 더치(Dutch)라는 단어에는 ‘독일의’라는 다른 의미가 있다. 이는 이 단어가 원래 독일과 네덜란드를 포함한 게르만 일반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7세기 무렵 주도권을 다퉜던 영국이 네덜란드를 겨냥, 더치라는 단어에 경멸의 뜻을 넣어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더치 액트(Dutch act)는 자살행위, 더치 엉클(Dutch uncle)은 ‘사정 없이 비판하는 사람’, 더치 커리지(Dutch courage)는 ‘술김에 부리는 허세’를 의미하게 됐다.

▦ 더치페이(Dutch pay)에도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 네덜란드인은 원래 남 대접하기를 좋아하는데 영국이 반대로 자기 먹은 것은 자기가 내는, 이기적이고 쩨쩨한 관습이라고 비꼬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유래와 상관없이 더치페이는 지금 많은 나라에서 흔한 풍경이다. 자기 몫을 자기가 내는 것이어서 합리적이다. 그런 더치페이가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한국에서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 역시 “이 법은 더치페이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여전히 낯설어 하는 사람이 많지만 한국에도 더치페이 문화는 여성과 젊은이를 중심으로 이미 널리 퍼져 있다. 전체 비용을 사람 수대로 나눠 내는 ‘n분의 1’ 방식은 30년 가까이 됐다. 한 사람이 돈을 내면 다른 사람은 자신이 내야 하는 비용을 나중에 폰뱅킹으로 송금하기도 한다. 한 테이블에서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도 각자 음식 값을 따로 내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최근 한 식당에서 ‘각자 계산 불가’라는 글을 붙이기도 했다. 단체로 와 놓고 계산은 따로 하는 바람에 계산 줄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 온라인 공간에는 데이트 비용을 둘러싼 신경전이 의외로 많다. 일부 남성은 좀생이 소리 들을까 봐 비용을 다 내겠다며 호기를 부리고는 돌아서서 여자를 흉보고 ‘개념녀’를 그리워한다. 이를 불쾌해하며 비용을 분담하는 여성이 있지만 반대로 지갑을 꺼냈다가 못이기는 척 다시 넣는 여성도 있다. 나이 들어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다 내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이와 성에 상관없이 돈을 나눠 낸다면 조금 더 동등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라도 김영란 법은 성공해야 한다.

박광희 논설위원 kh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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