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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비난 자초한 기자협회의 '김영란법'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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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비난 자초한 기자협회의 '김영란법' 항변

입력
2016.07.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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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가 열리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취재원에게 3만원이 넘는 밥을 사 본적도 있지만 얻어먹어본 적도 있는 터라 지난 28일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습니다. 밥값이란 게 주로 먼저 식사를 제안한 사람의 몫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가 먼저 만남을 제안하는 사람이 많은 부서에 몸을 담았을 땐 밥값을 제가 내고, 저를 찾는 취재원이 많은 부서에선 취재원이 밥값을 대는 상황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28일 헌법재판소가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9월 28일부터 공직자와 언론인 등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을 제공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날 판결 이후 뿌리깊은 부정부패를 청산하고 청렴사회로 돌입하게 될 것이란 기대감이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인 듯했습니다. 적어도 한 단체의 성명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헌재 판결이 나온 직후 국내 신문과 방송, 통신사 소속 기자 1만 여명이 가입돼 있는 한국기자협회는 ‘김영란법 비판언론 재갈물리기 악용 안 된다’란 제목의 반발 성명을 내놨습니다. 기자협회는 지난해 3월 언론인을 이 법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헌법이 정한 언론의 자유와 평등권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낸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기자협회는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이 최종 포함돼 앞으로 취재 현장은 물론 언론계 전반이 혼란은 불 보듯 뻔해졌다”며 “3만원이니 5만원이니 하는 금액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기자들은 취재원을 만나 정상적인 취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이라고 유감을 표했습니다. 또 “개념도 모호한 ‘원활한 직무수행’이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한 ‘직무관련성’ 여부를 입증하기 위해 기자들이 취재현장 대신 사정당국에 불려 다녀야 할 지도 모른다”며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국내 최대 기자 직능단체인 기자협회의 불만이 정작 기자들에게선 공감을 얻지 못 하는 분위기입니다. 기자협회의 입장이 기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국내 한 종합일간지에 근무하는 A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자들이 취재원으로부터 과도한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불필요한 오해를 벗고 더 자유로운 취재활동에 매진하겠다고는 못할 망정 기자들을 특권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부도덕한 이미지로 만든 것 같아요.”

다른 종합일간지 B기자의 일갈은 더 매섭습니다. “취재는 안 하면서 호텔 밥만 얻어 먹는 부장급 기자들이 썼나 보네요.”

한 방송사의 C기자 역시 “방송 뉴스가 언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그 어느 때보다 달게 받는 요즘, 성명 내용이 적절해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해당 성명을 접한 네티즌들 역시 “얻어 먹어야 취재를 할 수 있다는 건가요?”(트위터 아이디 de******), “여지껏 일 어떻게 한 거니?”(no*****), “김치찌개는 네 돈 주고 사 먹으세요”(ss******) 등의 원색적인 조롱과 비난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법 시행을 놓고 김영란법처럼 각종 논란을 일으킨 사례도 드물 겁니다. 워낙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고 규제 대상자의 수가 방대한데다 법 집행이 몰고 올 부작용 역시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 적용대상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포함시킨 부분에 대한 논란도 같은 이유입니다.

“공공과 민간의 본질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규제해선 안 된다”며 “민간영역 중 교육이나 언론만을 적용 대상으로 삼은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 졸속 입법으로 국가 형벌권을 과도하게 행사하는 것”이라며 위헌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 2인(김창종ㆍ조용호)의 목소리 역시 무시해선 안 되는 논리입니다.

그럼에도 기자협회의 항변이 못내 아쉬운 건 사실입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핑계로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소홀했던 건 아닌지, 저도 모르는 사이 자본의 달콤한 논리에 길들여져 저널리즘의 양심에 눈 질끈 감고 있는 건 아닌지 먼저 돌아보는 게 우선 아닐까요. 김영란법을 비판하기 위해선 언론이 자성의 시간을 우선 가져야 맞을 듯합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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