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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직장 잃어도 괜찮다는 ‘아파트 집단대출’

입력
2016.07.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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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해양과 아파트 집단대출. 두 단어만 놓고 보면 아무런 관련성이 없을 거 같은데 자세히 살펴보면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전자는 수년간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폭탄이 터져 이미 문제가 됐고, 아파트 집단대출은 최근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그 동안 드러나지 않은 부실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거든요. ‘설마 무슨 일 생기겠어’와 같은 안이한 생각이 문제를 키우고 있는 주범이라는 점도 같습니다.

대우조선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2010년 이후 대우조선이 기울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대출을 계속 해줬습니다. 조선경기가 살아나면 대출금 회수에 문제가 없다고 본 거죠. 대우조선을 ‘대마불사(큰 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로 여겼던 산은은 대우조선이 4조원이 넘는 혈세를 수혈 받아야 할 상황으로 내몰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파트 집단대출 얘길 다시 꺼내볼까요. 정부는 지난해 주택담보대출 기준을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철저히 살피는 방향으로 바꾸는 내용의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지만, 여기에 아파트 집단대출은 제외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 조치를 두고 정부가 위험한 도박을 했다고 얘기합니다.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되는데도 정부가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을 걸 우려해 무리수를 뒀다는 겁니다. 물론 부동산 경기가 계속 호황을 이어간다고만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겁니다. 만약 조선경기가 갑자기 살아났다면 대우조선의 운명이 바뀔 수 있었던 것처럼요. 하지만 누구도 미래에 어떤 상황이 이어질지 모르죠.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는 계속 불면 언젠가는 터진 거란 걸 알지만 여기서 중단하면 부동산경기가 하드랜딩으로 갈 것 같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계속 부는 거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폭탄이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해만 해도 아파트 집단대출과 관련한 뉴스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 들어 아파트 집단대출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옵니다. 지난해만 해도 아파트 집단대출은 민간 은행들과 건설사 간 사적 계약이라며 분명히 선을 긋던 금융당국도 뒤늦게 실태조사를 하겠다며 나섰습니다. 정부도 문제가 있다는 걸 직감한 거죠.

이상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5월까지 금융권 아파트 집단대출은 10조원 가량 급증했습니다. 이미 지난 한 해 증가치(8조7,000억원)를 넘어섰습니다. 올 들어 증가세가 잠잠해진 일반 주택담보대출과 달리 아파트 집단대출만 급증한 겁니다. 집단대출 사고율도 올 들어 증가했습니다. 은행의 집단대출에 대해 보증 역할을 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올 6월 기준 중도금대출을 갚지 못해 발생한 사고 건수가 108건으로 지난 한 해 수준(66건)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는데요. 전문가들은 단순히 올 들어 집단대출이 급증해서 문제가 되기 보단 부적격 대출자의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분양 받은 아파트는 몇 번에 걸쳐 값을 치릅니다. 분양가의 70%(계약금 10%)는 중간에 치르고, 입주 때 나머지 30%를 한꺼번에 냅니다. 집단대출은 중도금대출과 잔금대출로 나뉘는데 분양가의 70%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1억원짜리 집을 산다고 할 때 3,000만원만 있으면 은행 대출로 새집을 살 수 있는 겁니다. 중도금대출에 대한 보증은 건설사나 주택도시보증공사와 같은 보증기관이 섭니다. 보증서를 믿고 은행이 건설사에 대출금을 쏴 주면 건설사는 이 돈으로 집을 짓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선분양 제도죠.

그런데 집단대출은 보증서에만 의존해 일으키는 대출이어서 따로 대출자의 소득을 따지지 않습니다.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소득심사를 하긴 하지만 이 기준이 상당히 느슨해 소득이 없어도 집단대출을 받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거든요. 은행들도 소득이 없는 사람은 걸러내고 싶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합니다.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이 은행이 대출을 해주지 않아 집 살 기회를 놓쳤다고 금융감독원에 민원이라도 넣기라도 하면 오히려 은행이 불이익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은행들은 직업이 없는 사람이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면 부인의 소득증명 서류를 대신 제출하는 우회 방식으로 대출을 해준다고 합니다. 만기를 앞둔 예금통장을 소득원으로 대신 제출해 집단대출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아파트 입주물량이 쏟아지는 내년부터 아파트 집단대출이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내년부터 2년간 전국에 쏟아지는 아파트 물량은 74만가구를 웃돕니다. 지난 2002년 이후 가장 많은 물량인데요. 대규모 물량이 쏟아진 여파로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문제가 됩니다. 가령 분양가보다 입주시점 집값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집을 담보로 잔금대출을 받는 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부적격 대출자가 상당히 많을 걸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특히 은행들은 지난해부터 분양시장이 호황이다 보니 소득수준은 떨어지지만 매매차익을 노리고 분양시장에 뛰어든 투자자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은 최근 집단대출을 받은 대출자를 분석해 보니 실수요자보다 매매차익을 노리고 5~6군데씩 청약을 넣은 투자자들이 더 많았다고 설명합니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김남근 변호사는 “일반 개인대출과 달리 집단대출은 한번 부실이 생기면 사회적 파장이 엄청나다. 집값이 떨어져 입주자들이 대출을 잘 갚지 못하면 결국은 보증을 선 시공사도 타격을 받아 후폭풍이 상당할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 대응은 느긋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자칫 주택경기 불씨가 꺼지진 않을까 우려해 집단대출에 대해선 정부 규제가 적용돼선 안 된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계부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실태를 살펴보긴 하겠지만 직접 규제에 나설 계획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고요. 누구도 나서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겁니다.

미국은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는 대출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규정해 엄격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이 대출자의 갚을 능력은 따지지 않고 나중에 못 갚는 상황이 되면 담보로 잡은 집만 빼앗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빌려준 대출은 일종의 약탈행위에 가깝다는 겁니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이후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대출 부실 사태가 전례 없는 금융위기로 번지는 걸 목격하고 나서야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는 ‘묻지마 대출’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게 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했고요. 보증기관이나 건설사의 보증서 하나로 이뤄지는 아파트 집단대출, 그런데 대출자의 소득은 따지지 않는 이 ‘묻지마 대출’, 과연 괜찮은 걸까요?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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