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정치권 낙하산’ 의혹이 제기된 인물을 차기 대우건설 사장으로 선임하기 위해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소속 대우건설 사외이사들을 만나 회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면 돌파하겠다는 ‘윗선’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28일 복수의 사추위 관계자에 따르면, 산은 측 사추위원들은 2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호텔로 사추위 소속 대우건설 사외이사 3명을 불러 비공개 회동을 갖고 박창민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을 사장 후보로 확정할 것을 종용했다. 사추위는 산은 임원 2명(전영삼 부행장, 오진교 사모펀드실장)과 대우건설 사외이사 3명(권순직 전 동아일보 주필, 박간 해관재단 이사, 지홍기 전 영남대 교수)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산은이 대주주(지분율 50.75%)인 대우건설은 사추위가 사장 단일 후보를 추천하면 이사회 의결로 확정한다.
산은이 차기 사장으로 밀고 있는 박 전 사장은 여당 실세 국회의원이 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인물이다. 대우건설 몫 사추위원들과 이 회사 노조는 대우건설 사업의 절반을 차지하는 해외건설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사장 선임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산은 측 사추위원들은 이날 회동에서 “대우건설이 지나친 순혈주의에 빠져 있어 외부 출신 사장이 필요하고, 해외건설 경험이 없다고 해도 실무진이 충분히 받쳐줄 수 있다”며 박 전 사장의 선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 사추위원은 전했다. 산은 측은 특히 “주택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박 전 사장의 경력에 큰 하자가 없으니, 대주주(산은)의 입장을 존중해 달라”고 사실상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우건설 측 사추위원은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들에게는 사실상 윗선의 의사를 전달하는 상황으로 이해됐다”고 회동의 분위기를 전했다.
앞서 20일 사추위는 박 전 사장에 대한 낙하산 논란이 비등하자 최종 후보 2명(박 전 사장, 조응수 전 대우건설 플랜트사업본부장) 중 1명을 확정하기로 했던 당초 계획을 접고 “숙려기간을 갖겠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이날 회의에도 산은 측 사추위원 2명은 박 전 사장의 사장 선임을 강력히 주장했으나, 대우건설 측 사추위원들이 “제2의 대우조선해양이 되면 누가 책임을 지느냐”며 맞서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산은이 박 전 사장 카드를 포기하고 사장 후보 추천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숙려 기간을 갖겠다고 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인 27일 비공개 회동을 갖고 사추위원 회유에 나선 것으로 확인되면서, 산은 측이 정면 돌파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권 고위 인사는 “산은 독자적인 판단으로는 볼 수 없다“며 “정치권과 금융당국 등 윗선이 강행을 지시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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