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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그때 그 사람들’

입력
2016.07.29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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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올림픽 최초의 우승자인 제임스 코널리(미국). 출처=위키피디아
근대올림픽 최초의 우승자인 제임스 코널리(미국). 출처=위키피디아

근대올림픽 최초의 메달리스트

피에르 쿠베르탱(프랑스)의 제창으로 1,500년간 중단됐던 고대 올림픽은 1896년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했다.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에는 그리스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14개국에서 총 243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9개 종목, 세부 43개 종목에서 열전을 벌였다. 미디어도, 자원봉사자도 없던 시대였다. 미국의 제임스 코널리가 최초의 근대올림픽 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코널리는 아테네 올림픽 개막 직후 열린 육상 세단 뛰기에서 13.71m의 기록으로 월계관을 썼다. 그는 1,500년 만에 부활한 근대올림픽 첫 메달리스트로 기록됐다. 당시엔 금메달이 없었고 1위가 은메달, 2위가 동메달이었다. 메달의 한쪽 면은 ‘올림피아’라는 캡션과 함께 그리스 제우스 신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1~3위에게 메달이 수여된 건 제3회 세인트루이스(1904년) 대회 때부터다. 아테네 올림픽 수영 경기는 바다에서 열렸다. 아테네 인근의 피레만이 경기장이었다. 수영 100m 우승자인 알프레드 하요스(헝가리)의 기록은 1분22초. 현재 100m 자유형 세계신기록은 46초91이다. 하요스는 1,200m에서도 우승해 올림픽 수영 첫 2관왕이 됐다. 당시 조직위원회는 바다를 오가는 수많은 배들을 통제하느라 바빴다고 하니 지금 수영 종목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위스의 요트 선수 헬렌 포탈레스. 출처=위키피디아
스위스의 요트 선수 헬렌 포탈레스. 출처=위키피디아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

고대 올림픽 초기에는 2가지의 출전 기준이 있었다. 첫째 그리스에서 태어난 남성이어야 하고, 둘째 자유 시민이어야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다. 여성과 노예, 외국인은 올림픽 출전이 원천 봉쇄됐다. 단 여성의 경우, 소유한 말이 전차 경주에서 우승할 경우, 선수 대신 소유주가 월계관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은 선수로서 참가할 수 없었다. 이 전통을 깬 이가 스파르타 출신의 키니스카였다. 스파르타의 아르키다모스 왕의 딸이었던 키니스카는 기원전 396년, 392년 두 차례 전차 경주에 선수로 출전해 모두 우승했다. 이는 고대 올림픽 사상 최초로 여성이 우승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여성이 처음으로 등장한 근대 올림픽은 1900년 제2회 파리 대회로 22명이 출전했다. 여성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스위스의 요트선수 헬렌 포탈레스다. 포탈레스가 금메달을 목에 건 2개월 후 영국 출신의 샬럿 쿠퍼도 여자 단식 테니스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쿠퍼는 혼합복식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 2관왕에 올랐다. 또 미국의 앨빈 크랜즐린의 활약도 도드라졌다. 크랜즐린은 육상 60m, 110m, 200m 허들과 멀리뛰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초의 4관왕이다.

오다 미키오. 출처=위키피디아
오다 미키오. 출처=위키피디아

제1호 아시아 출신 선수와 올림픽 챔피언

아시아 국가 중 인도 선수(노먼 프리차드)가 1920년 파리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노먼 프리차드는 육상 200m와 200m 허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어 아시아 최초의 메달리스트로도 기록됐다. 일본은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 올림픽에 처음 등장했고, 중국은 1924년 파리 올림픽을 통해 국제 스포츠계에 이름을 알렸다.

아시아인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는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에서 남자육상 세단뛰기에 출전해 우승을 차지한 오다 미키오다. 최초의 흑인 금메달리스트는 1908년 런던 대회 수영 남자 1,600m 계주에서 우승한 미국의 존 테일러였다.

파리 올림픽 줄다리기 장면. IOC홈페이지
파리 올림픽 줄다리기 장면. IOC홈페이지

줄다리기도 올림픽 종목

줄다리기는 1900년 파리 올림픽부터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까지 정식종목으로 인정받았다. 그것도 당시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올림픽 초창기다 보니 대회 때마다 규정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대표적인 예가 1908년 런던올림픽에서 일어난 스파이크 논란이었다. 당시 영국 대표로 나선 리버풀 경찰관 팀은 스파이크가 박힌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반면 미국팀은 일반 운동화를 착용했다.

미국팀은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심판진은 영국의 손을 들어줬다. 규정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심판들은 대부분 영국인들이었다. 격분한 미국팀은 경기를 포기했고 영국이 어부지리로 금, 은, 동메달을 싹쓸이했다. 하지만 대회는 엉망이 됐다.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920년 올림픽을 끝으로 줄다리기를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퇴출시켰다. 비록 올림픽에선 사라졌지만 줄다리기는 스포츠 경기로서 유럽에서 꾸준히 발전했다. 경기 방식이나 규정도 세밀하게 정비됐다. 일본과 대만에선 생활체육으로서 큰 인기를 얻었다. 1999년에는 세계줄다리기연맹(TWIF)이 IOC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에 도전하기도 했다. 럭비나 골프처럼 올림픽에서 다시 부활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싱글스틱. 출처=위키피디아
싱글스틱. 출처=위키피디아

상대 머리를 때려 피가 나야 이긴다고?

사라진 정식종목 가운데 가장 엽기적인 종목은 ‘싱글스틱’이다. 싱글스틱은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에서 유일하게 열렸다. 손잡이가 둥근 목검을 들고 싸우는데 두 선수가 마주 선 뒤 상대 머리를 공격해 먼저 피가 나는 쪽이 지는 경기였다.

1936년 베를린에서의 스피리 돈 루이스. 출처=위키피디아
1936년 베를린에서의 스피리 돈 루이스. 출처=위키피디아

마라톤 42.195㎞는 언제 정착?

1회 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종목은 마라톤이다. 개최국 그리스의 아테네 근처에 사는 청년들이 대거 출전했다. 13명의 그리스 대표와 4명의 외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그리스의 스피리 돈 루이스가 2시간 58분 50초의 기록으로 우승해, 국민적 영웅이 됐다.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www.olympic.org)에 따르면 당시 루이스는 결승선 통과까지 7분을 남겨둔 지점부터 극적으로 선두에 나섰고, 약 10만 명의 관중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루이스를 환호했다. 그런데 이 때는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까지 거리가 36.75㎞였으며, 이후 개최지 여건에 따라 통일된 거리가 아니라 40㎞ 전후를 달렸다. 지금의 42.195㎞가 정착된 건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으로 당시 윈저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가 42.195㎞였다. 그러나 이것 역시 원래는 42㎞였는데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왕비이던 알렉산드라가 마라톤의 결승점을 메인스타디움에 마련된 귀빈석 자신의 자리 바로 앞 쪽으로 잡아줄 것을 요구했고, 조직위원회가 받아들였다. 당초 조직위가 정해 놓았던 결승점에서 귀빈석 바로 앞까지의 거리가 195m였다.

1932년 LA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대한체육회 제공
1932년 LA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김은배(왼쪽)와 권태하. 대한체육회 제공

한국인이 첫 출전한 대회

1932년 LA 올림픽은 제1차 대전 이후 발생한 대공황과 열악했던 로스앤젤레스의 접근성 때문에 참가 선수가 이전 대회였던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의 2,883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332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대회의 수준은 매우 높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한국인이 처음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일본의 식민지 상태여서 일본 대표로 선발돼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마라톤의 김은배와 권태하, 그리고 복싱의 황을수가 그 주인공이다. 김은배와 권태하는 마라톤에서 각각 6위와 9위의 성적을 올렸다.

한편 올림픽과 미디어의 만남은 1924년 파리대회부터다. 1,000명이 넘는 기자들이 올림픽 취재에 뛰어들었다. 라디오를 통한 올림픽 중계방송도 파리대회가 처음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ㆍ정진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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