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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은 운명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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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은 운명이었을까

입력
2016.07.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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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양궁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는데 시초 역할을 한 김진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여자양궁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오르는데 시초 역할을 한 김진호. 한국일보 자료사진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지만 그래도 생각해본다. 만약 한국이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했다면? 한국 올림픽 사상 첫 여자 금메달의 주인공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서향순(49)이 아니라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김진호(55)의 차지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

경북 예천 출신의 김진호는 예천여중 1학년 때부터 활을 잡았다. 예천여고 1학년이던 1977년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해 1위를 차지하며 고교 국가대표가 됐다.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을 딴 뒤 이듬 해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5관왕(30m, 50m, 60m, 개인종합, 단체)을 거머쥐며 ‘신궁’의 탄생을 알렸다.

아무도 김진호의 모스크바 올림픽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서방 국가들이 줄줄이 불참을 선언했고 한국도 동참하면서 금빛 시위를 4년 뒤로 미뤘다.

1983년 LA 세계선수권 우승 뒤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1983년 LA 세계선수권 우승 뒤 카퍼레이드를 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진호는 1983년 10월 LA 세계선수권에서 다시 한 번 5관왕에 오르며 1년 앞으로 다가온 LA 올림픽에 기대감을 높였다. 하지만 너무 큰 부담이 그를 짓누른 탓 일까. LA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이자 여고생 신궁 신화의 영예는 열일곱이었던 서향순에게 돌아간다. 당시는 개인전만 열렸는데 김진호는 0점을 두 번이나 쏘는 난조를 보인 끝에 자신의 세계기록(2,636점)에 한참 모자란 2,555점으로 동메달에 그쳤다. 대신 서향순이 침착한 경기 운영을 편 끝에 2,568점으로 중국의 리링주안을 따돌리고 시상대 맨 위에 섰다. 김진호는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3관왕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한국 여자양궁 계보에는 유독 여고생 금메달리스트가 많다. 1984년 서향순부터 1988년 서울 대회 2관왕 김수녕(45), 2000년 시드니 대회 2관왕 윤미진(33)까지. 하지만 그 원조는 고 3때이던 1979년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김진호다.

한국 여자 양궁은 단체전에서 1988년 이후 7연패를 기록 중이다. 1984년부터 시작한 개인전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만 빼고 역시 7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비록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했지만 김진호는 30년 이상 세계 최강을 지켜오고 있는 한국 여자양궁의 시초로 평가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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