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세원’도 구호에 그쳐
일몰 조항 상당수가 살아남아
근소세 면세자 축소 대책도 빠져
정부의 올해 세법개정안에는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을 조정하는 내용은 전혀 담기지 않았다. 야당을 중심으로 법인세율 등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정부는 “현 시점은 세율을 조정할 적기가 아니다”며 확실히 선을 그었다. 세율에 손대지 않으려는 정부ㆍ여당과 법인세율을 올리려는 야당이 맞서면서, 세법개정안 국회 통과 과정에서 증세 문제는 가장 첨예한 이슈가 될 전망이다.
증세는 없었다
고령화ㆍ저출산에 따른 복지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한 증세 요구가 존재함에도 정부가 결국 세율에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이행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경제에 힘이 떨어진 상황에서 법인세 등을 올리게 되면 경기회복 불씨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논리도 작용했다. 최상목 기재부 1차관은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정부가 경제활력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는 시점에서 법인세율을 인상할 수는 없다”며 “선진국들도 법인세를 인하하는 추세고 주변 경쟁국 세율도 낮다”고 말했다.
내년이 대통령 선거인 점을 감안하면, 현 정권에서 정부 주도의 증세 시도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부분은 야당의 집중 공세를 받을 공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121석)은 이미 법인세 인상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세율 인상을 관철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민의당(38석)도 상당히 공감을 하는 분위기고 정의당(6석) 역시 증세에 찬성하고 있어, 야 3당 합의에 따라 국회가 주도하는 법인세율 인상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20대 국회 들어 윤호중(더민주) 박주민(더민주) 김동철(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세율 22→25%) 3건이 제출된 상태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새누리당이 반대하면 국회를 통과하기는 어렵지만, 야당 역시 정기국회에서 증세 문제를 세법개정안 및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는 카드를 들고 나올 수 있다. 다만 야권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기업이 부담을 느낄 법인세율 인상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넓은 세원도 없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천명해 온 ‘낮은 세율, 넓은 세원’ 원칙 중 ‘낮은 세율’만 그 기조가 유지될 뿐, ‘넓은 세원’을 구현하는 일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세제개편안에서는 “비과세ㆍ감면을 축소하겠다”는 평소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조세지출(비과세ㆍ공제 등으로 감면해주는 세금)과 관련한 25개 일몰조항 중 21개가 재설계 또는 단순연장 형태로 살아남았다.
이밖에 여러 세제 전문가들이 강하게 주문해 왔던 근로소득세 면세자 감소 대책도 빠졌다. 각종 공제혜택 등을 통해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는 근로자의 비율은 2013년 32%에서 2014년 48%로 급증했고, 지금도 근로자의 절반 정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제 역시 세제개편안 국회 처리 과정에서 주요 의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면세자 비율 확대로 과세기반 증가세가 부진하면서 장기적으로 세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며 근소세 면세자 비중을 축소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세율조정(증세) 대신 비과세ㆍ감면을 축소하는 식으로 합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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