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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알지 못한다

입력
2016.07.2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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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6월 한일월드컵 마지막 날 밤 19세 여고생이 살해된다. 같은 반 남학생 두 명이 용의 선상에 떠오르고 알리바이를 분명하게 입증 못 한 한만우라는 학생이 집중적인 수사 대상이 된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건은 미제(未濟)로 남게 된다. 권여선이 ‘창비’ 여름호에 발표한 중편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는 사건 이후 14년이 지난 시점에서 주변 인물들의 끝나지 않는 고통을 이야기한다. 당연히 가장 큰 상처는 가족의 몫이다. 엄마와 동생 다언은 그 횡액 이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다. 죽은 딸의 개명(改名)에 집착하는 엄마나 여러 차례 성형수술까지 하면서 언니의 빈자리를 대신하려는 동생의 욕망과 복수심은 처절하다. 어쨌든 고통의 당사자가 아닐 때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모녀가 끝내 저지르는 복수의 범죄까지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 대목은 논쟁적인데 여기서는 일단 말을 아끼기로 한다.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 실패한 애도의 이야기는 많다. 애도의 시간을 모욕하는 일이 공권력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이즈음의 현실에서라면 이 문제는 더 많이 발화되고 질문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애도 자체가 어느 면에서 정형화되거나 준비된 해답의 자리로 바뀌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도 필요한 것 같다. 애도해야 할 죽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죽음이 있는 것은 아닐 테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 가름선을 조금씩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개돼지’라는 선은 사실 너무 공공연한 것이기도 했던 터라 다들 그리 놀라지도 않았을 테지만, 그 외설적 누설을 통해 우리가 딛고 있는 민주주의의 지반이 얼마나 허약하고 위태로운지 새삼 확인시켜 준 공로는 있는 듯하다. 보다 중요하기로는 애도란 결국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상실은 철저히 살아남은 자의 시선이다. 타인의 고통과 희열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끝끝내 모른다.

그러니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상상은 어떻게, 왜 하는가. 권여선의 소설은 세 사람의 시점으로 되어 있지만, 동생의 시점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한만우의 경찰 조사 과정을 낱낱이 복원하는 다언의 상상이 사건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 말고도 복수심과 은밀한 개인적 욕망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쩌면 공감의 상상력이라는 중립 지대는 없으며, 여기에도 ‘주고받기’의 계산서는 치열하게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구도는 다언의 시점 뒤에서 이야기를 기술하는 작가의 자리 역시 질문에 부친다는 점에서 좀 더 철저하다. 그런 가운데 소설은 마침내 한 인간의 진실을 상상하는 값진 순간에 도달한다. 어느 면에서는 사건의 가장 가혹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한만우(난쟁이 엄마와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의붓동생이 한가족이다)는 한창 젊은 나이에 골육종을 앓다가 죽는다. 다언은 그가 일하던 세탁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다.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 있을까. 왼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오른손에 긴 스팀다리미를 쥐고 시트를 다림질하던 그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심지어 그의 폐에 퍼진 암세포보다 더 펄펄 살아 있지 않았던가. (…) 그것이 삶의 의미일 수는 없을까.” 동의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아마도 한만우는 그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 이런 생각 또한 오만일 테다.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이 나던 날 치킨 배달 스쿠터 뒤에서 그의 허리 양쪽을 가볍게 붙들고 있던 어떤 소녀의 손길을. 그때 그가 느낀 낯선 희열과 공포를. 언제나 다 알고 있는 사람은 ‘한만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라는 사실을.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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