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추가 결합하는 공정 개발
수시간 만에 85%가 고품질화
고급 매장량 줄며 핵심 기술로
지난 19일 대전 유성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공정(CCP)융합연구단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32~33도의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덮쳤다. 어른 키의 두 배나 되는 커다란 설비들이 줄지어 열기를 내뿜는 통에 냉방 장치가 가동되는 데도 실내온도는 바깥의 폭염과 큰 차이 없었다.
실험실 한쪽에선 품질이 떨어지는 원유를 ‘명품’으로 탈바꿈시키는 실험이 한창이었다. 저급 원유를 고온ㆍ고압 환경에서 수소와 반응시키면 2~3시간 만에 85% 정도의 원유가 고품질로 변한다. 주로 탄소와 수소로 이뤄진 기름 성분은 수소 함량이 높을수록 가볍고 잘 타는데, 공정을 거친 원유는 이전보다 수소가 훨씬 많아진다. 휘발유가 경유보다 잘 타는 것도 수소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지난 100여년 동안 인류는 수소가 많이 포함된 고급 원유만 골라 썼지만 10여년 뒤면 바닥이 드러난다. 때문에 무겁고 불순물이 많은 중질원유, 모래에 섞여 있는 오일샌드, 진흙이 굳은 암석(셰일)층에 함유된 셰일오일 등 저급 원유의 품질을 높이는 기술이 중요해졌다.
저급 원유 활용 기술의 중요성을 미리 내다본 융합연구단은 수소 함량이 적은 원유에 수소를 추가로 결합시키는 공정을 개발하고 있다. 박용기(화학연 책임연구원) CCP융합연구단장은 “저급 원유의 90% 이상을 고급으로 바꿀 수 있을 정도로 효율을 높여 기업이 상용화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구단은 공정에 필요한 수소를 제철소에서 얻는 방법도 찾고 있다. 제철소에서 나오는 부산물 가스에는 수소가 들어 있는데, 지금은 발전용으로만 일부 사용하고 모두 버린다. 연구단은 저급 원유의 품질을 높이는 데 이 수소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스틱 같은 화학제품을 만드는 원료는 대부분 원유에서 얻는다. 원유 생산량이 줄면 화학제품 생산도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문에 연구단은 석탄ㆍ가스에서 얻는 일부 성분을 원유와 섞어, 같은 양의 원유에서도 순도가 높은 화학제품 원료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기술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이런 기술들을 개발하려면 화학제품 원료를 1년에 약 200만톤 이상 생산할 수 있는 대형 플랜트가 필요한데, 이는 현재 국내 업계 화학제품 원료 생산량(연간 약 1,000만톤)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연구자 한두 명으로는 기술 개발의 엄두도 못 낼 상황이라, 2014년 융합연구단이 구성됐다. 화학연을 중심으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기계연구원 등 4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진 70여명이 한 곳에 모여 머리를 맞대기로 한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6년간 매년 100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이들은 연구에 필요한 대형 플랜트를 가진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박 단장은 “향후 저급 원유를 고급화하는 촉매, 화학제품 원료를 고순도로 분리하는 소재 기술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만들어 국내 소재산업 기반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전=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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