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연상호(38) 감독은 “‘곡성’은 사기”라고 했다. “영화의 반 이상이 속임수”라고도 지적했다. 쓰디 쓴 비판으로 들릴 수 있는, 직설적인 발언이다. ‘곡성’의 편집 기간은 8개월인데 자신은 ‘부산행’ 편집을 한 달 만에 해냈다고 자랑도 했다. 6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작 ‘부산행’으로 요즘 가장 주목 받는 감독이 얼마 전까지 극장가 화제를 독차지했던 작품을 품평했으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죽거리듯 하는 말 속에는 묘하게도 뜨끈한 애정이 배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연 감독은 “(‘곡성’의) 나홍진(42) 감독과 단편영화 만들 때부터 알았고, 영화계에서 가장 친한 감독 중 한 명”이라고 덧붙였다.
연 감독과 나 감독은 비슷한 점이 많다. 네 살 차이로 1990년대에 대학 생활을 보냈으니 정서의 공감대가 제법 넓다. 두 사람의 작품들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한다. 남이 간 길을 따라가지 않는 속성도 닮았다. 연 감독은 잔혹 스릴러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을 선보이며 애니메이션은 발랄하고 희망적이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깼다. ‘곡성’으로 무속과 기독교를 활용해 공포를 만들어낸 나 감독의 독창력도 남다르다. 심지어 면도를 잘 하지 않는 거칠한 외모까지 둘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눈을 잡는 공통점이 있다. 연 감독은 상명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나 감독은 한양대 공예과를 졸업했다. 미술에 바탕을 둔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둘의 이력은 각자의 영화세계에도 영향을 줬다. 연 감독의 장편애니메이션 '돼지의 왕'과 '사이비'에선 미술학도의 자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오똑한 콧날과 커다란 눈망울이 액센트인 서구적 캐릭터 대신 광대뼈에 살짝 째진 눈매의 토속적 인물을 내세우며 개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나 감독이 스릴러의 홍수 속에서 자기만의 뚜렷한 물결을 드러내는 데는 회화의 질감으로 공을 들인 미장센이 큰 힘이다.
충무로에선 인문학적 소양을 지녔거나 대학 시절 영화를 전공한 감독이 주류를 형성했다. 박찬욱 감독은 철학, 봉준호 감독은 사회학, 최동훈 감독은 국문학을 각각 전공했다. 김한민 감독은 경영학도였고, 강우석 감독은 영문학을 공부했다. 강제규 김용화 감독은 영화학과 출신이다. 이들의 미적 성취를 낮게 볼 수 없으나 학창시절부터 미적 감각을 길러온 나 감독과 연 감독의 부상은 눈여겨 볼 만하다. 뚜렷한 개성과 예술적 정체성을 지닌 감독의 전면적인 등장이 충무로에 어떤 지형도를 만들어낼까. 2016년이 선사한 흥미로운 의문부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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