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구글은 지주 회사 이름을 ‘알파벳’으로 바꿨다. 세계 최고 IT 회사가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 이름 ‘구글’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흔한 ‘알파벳’이란 이름을 선택하였다. 구글의 의도는 무엇인가. 구글을 창업한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에게 이름은 특별하다.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인생의 황혼기인 90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꾼다. ‘아브람’은 ‘아람(지역)의 조상’이라는 의미며, ‘아브라함’은 ‘온 세상의 조상’이란 뜻이다. 아브라함은 한 지역의 조상에서 세상의 조상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다. 자신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온 세상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이름을 버렸다.
구글이 꿈꾸는 미래는 ‘알파벳’이라는 명칭에 담겨있다. 인간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두 가지 요소는 도시와 문자다. 도시는 사적인 이해가 상충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대화와 양보를 통해 공동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추상적인 공간이며 문자는 이 추상적인 공간을 유기적으로 묶는 끈이다. 인류는 기원전 3100년경 처음으로 문자를 발명하였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문자인 고대이집트의 성각문자와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이들만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정보와 지식이 소수의 장악에서 벗어나,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문자 혁명이 두 번 일어났다. 첫 혁명은 기원전 18세기에 시작되었다. 이 문자를 만든 사람들은 놀랍게도 당시 지배계급이 아닌 ‘히브리인’들이었다. ‘히브리’는 셈족어로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란 의미다. 이들은 기존 지식정보체계에 반기를 들고 30개 이하 자음으로 이루어진 알파벳 문자 체계를 만들었다. 이들은 이 자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였다. 그들은 ‘집’ 모양을 그렸다. ‘집’을 셈족어로 ‘베이트’(beit)라 부른다. 히브리인들은 ‘집’ 그림을 ‘베이트’라고 읽지 않고 첫 자음 b로 읽었다. 이런 체계를 알파벳이라고 부른다.
두 번째 혁명은 기원전 12세기 페니키아 상인들이 주도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레바논에 거주하며 장거리 해상 무역을 하던 상인들이다. 이들은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 모로코, 카르타고, 그리스, 이탈리아, 시칠리아, 스페인과 무역하였다. 이들은 백향목, 도자기, 와인, 유리, 그리고 자줏빛 물감을 들인 옷감을 수출했다. ‘페니키아’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는데, 그 의미는 ‘자줏빛 나라’이다. 페니키아 앞바다에서 잡히는 특별한 뿔 소라인 무렉스(murex)에서 자주색을 축출하여 옷감을 염색했다. 지중해 연안 사람들에게 자줏빛 옷은 최고명품이었다. 그들이 그리스에 도착했을 때, 그리스에는 문자가 없었다. 크레타 섬과 미케네 섬에 선형문자 A와 선형문자 B가 있었지만 기원전 12세기경 사라졌다.
그들은 상거래를 위해 그리스인들에게 자신들의 페니키아 알파벳을 전달해 준다. 그리스인들은 페니키아인들로부터 알파벳을 수용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음과 자음을 더하여 그리스 알파벳을 창안하였다. 그들은 페니키아어로 ‘소’를 의미하는 ‘알렙’(aleph)을 ‘알파’(alpha)로 ‘집’을 의미하는 ‘베이트’(beit)를 ‘베타’beta로 수정하였다. 그리고 그 문자를 ‘알파벳’이라고 불렀다. 그리스인들의 천재성은 자신들에게 절실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창조적으로 변용했다는 점이다. 서양 문학의 시조인 호메로스는 기원전 750년경 이 새로 만들어진 알파벳으로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를 기록했다. 서양문명이 창조되는 순간이다. 영어를 포함한 오늘날 모든 유럽 문자들은 페니키아 알파벳의 후손들이다.
알파벳은 26개 문자로 인간의 모든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미니멀리즘의 총아다. 구글이 ‘알파벳’이란 이름을 통해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영어 알파벳 g로 시작하는 구글은 26개 글자로 구성된 ‘알파벳’ 지주회사의 하나가 되었다. 혁명(革命)이란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이름을 바꾸는’ 용감한 행위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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