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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누가 국가비상사태를 조장하나

입력
2016.07.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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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진압 후 터키에 피바람이 분다고 한다.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가운데 전국적으로 검거 열풍이 몰아치고 국민기본권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잇달아 시행되고 있다. 국가비상사태 하에서는 내각이 법률과 같은 효력의 명령을 쏟아내 국민을 옥죌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 모욕죄로 수천 명을 기소해온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제 국가비상사태라는 ‘합법적’ 으름장으로 독재체제를 완성하려 한다. 어디선가 많이 본 모습 아닌가.

사실 우리 현대사의 상당 기간은 국가비상사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남북대화가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단행된 이 조치의 명분은 황당하게도 북한의 남침 위협이었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나. 유신체제 하의 박정희는 단순한 행정명령에 불과한 긴급조치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마음대로 짓밟았다. 이것을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했다. 전두환 정권도 사실상 이를 답습했다. 이런 패악에 저항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생생하다.

처한 여건과 내용은 많이 다르지만 요즘 국가비상사태는 글로벌화하는 경향이다. 잇단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프랑스는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 줄곧 국가비상사태 하에 있다. 수사당국은 법원의 영장 없이 테러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해 가택 수색 및 연금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이마저 모자란다는 듯 프랑스 우파들은 테러 의심자 모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누구에게 전자발찌를 채울지는 국가라는 이름의 ‘합법적 폭력기관’이 정한다.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꿈꾸는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도 어떻게든 이런 수단을 만들어보려는 것 같다. 전쟁 포기를 규정한 현행 헌법 9조의 개정이 전부인 듯하지만, 개헌과 관련해 더욱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른바 긴급사태 조항의 신설 여부이다. 자민당이 2012년 내놓은 개헌안 초안에 따르면 외침이나 내란, 천연재해 등 위기상황에서는 각의가 긴급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이 경우 총리 스스로가 입법이나 재정지출을 명령하는 막강한 권력자가 된다.

따지고 보면 히틀러도 국가비상사태가 만든 괴물이었다. 당시 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던 바이마르 헌법의 한 구절, 즉 국가긴급권을 악용해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 가운데 ‘내부의 적’ 즉 정적들을 숙청했다. 그는 결국 바이마르 헌법마저 없앴고 스스로 총통이 됐다. 국가비상사태가 독재자를 만들었고, 국민 전체가 그 하수인이 되어 전쟁에 내몰린 것이다.

국가비상사태는 민주주의의 양날의 칼이다. 국가적 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것이 악용되어 민주주의와 인권이 희생되는 역사가 되풀이됐다. 권력자들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국가비상사태를 규정해 국민을 공갈 협박했다. 히틀러는 이것을 “결단력 있는 정치”라고 불렀고 “평화와 안전 확보”라는 미명하에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 여기에 수많은 독일인이 박수를 보냈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독재의 향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민주화 30년, 한국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누군가 또다시 국가비상사태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국민의 안전 이상으로 관료적 이익에 몰두하는 군부 권력, 0.01%가 부를 독점하면서도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재벌권력, 정의는커녕 제 밥그릇 챙기기에 혈안인 부패한 사정권력, 소통은커녕 국민을 겁박하는 데 분주한 듯한 대통령 권력의 폭주가 횡행하는 한 한국은 결코 안전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국가비상사태의 언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 ‘위협’ 등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위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응수단은 다름 아닌 ‘개돼지’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민주주의라는 사실을 되새겼으면 한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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