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낙원동에서 20년 동안 고미술품 가게를 운영해 온 정모(59)씨는 지난달 평소 알고 지내던 거래인으로부터 새로운 고객을 소개받았다. 차분한 인상의 오모(71)씨는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했고, 시가 2,3억원 정도로 평가되는 ‘고려청자 운학문 매병’에 관심을 보였다. 정씨는 장사도 안되던 차에 오씨가 추후 현금으로 값을 치르겠다고 제안하자 1억5,000만원만 받기로 하고 도자기를 넘겼다. 종교인이라는 오씨의 직업도 신뢰가 갔다. 하지만 달이 바뀌어도 돈이 들어오기는커녕 연락까지 두절되자 정씨는 오씨를 사기 혐의로 서울 동작경찰서에 고소했다.
알고 보니 동작서에는 정씨 외에 오씨를 고소한 사람이 둘이나 더 있었다. 사기 수법도 비슷했다. 재고의류 도매상인 고모(51)씨도 오씨를 목사로 소개받았다. 오씨는 물건을 더 싸게 팔아주겠다며 1억원어치 의류를 받고는 돈을 주지 않았다. 또 다른 피해자 박모(51)씨에게는 박씨가 가진 채권으로 이익을 남겨 주겠다고 꼬드겨 채권 1억원어치와 현금 3,000만원을 받아 챙긴 뒤 자취를 감췄다. 두 사람도 지난 4월 각각 오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동작서는 오씨를 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27일 밝혔다. 4월 당시 피고소인 신분이었던 오씨는 피해자들과 합의를 이유로 경찰의 출석요구를 계속 피해오다 체포영장을 발부 받아 검거에 나선 경찰에 의해 19일 강동구 암사동 인근에서 붙잡혔다.
조사 결과 오씨는 목회 활동은 전혀 하지 않은 ‘가짜 목사’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고 진술했으나 경찰은 이 역시 사기를 위한 위장 직업으로 보고 있다. 오씨가 피해자들에게서 가로 챈 물품과 채권 등은 아직 유통되지 않아 원주인에게 돌아갔다. 경찰 관계자는 “오씨는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을 속여 금품을 뜯어낸 전문 사기꾼”이라며 “10년 전부터는 안수기도를 받았다며 목사 행세까지 해왔다”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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