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남부에서 최근 이민자들의 흉기ㆍ폭탄테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발칸반도에 발이 묶여있는 난민들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국경 통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그나마 난민에 유화적이던 독일에서마저 이민자들의 거듭된 테러로 반 난민 여론이 치솟으면서 이들의 서유럽행 활로가 더욱 좁아지고 있어서다.
25일(현지시간)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독일로 향하는 길목인 헝가리와 세르비아에는 1,400여명의 중동 난민들이 국경에 몰려 헝가리 정부가 설정한 통행 허가구역 진입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에 헝가리가 받아들이는 난민 규모는 30명 정도지만 매일 100여명의 난민이 몰려드는 상황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난민들은 통행표를 받아든 채 국경을 넘어설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실정이다.
아프가니스탄 사진작가 사예드 파르웨즈 아흐마디(36)는 부인과 두 자녀를 데리고 헝가리 뢰스케 인근 난민촌에서 216번을 받고 대기 중이다. 그는 UNHCR에 “유럽연합(EU) 내에서 그저 자식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곳이면 된다”고 말했다. 그나마 일가족을 데리고 있는 난민의 순번은 빠른 편이다. 아프가니스탄 공무원 출신 마테올라 칸(22)은 “단독으로 움직이는 남성들은 특히 뒤로 밀려 있어 누구나 한 번은 밀입국을 생각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헝가리는 EU 난민 할당제를 노골적으로 반대하면서 국경에 장벽을 둘러치고 송환구역을 설정해 넘어오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세르비아로 돌려보내고 있다. 무사드(16)는 헝가리 경찰이 고춧가루를 뿌리고 폭력을 가했으며 개를 풀어 그를 쫓아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에는 헝가리 경찰이 난민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22세 시리아 남성이 티서 강에 빠져 사망하기도 했다. 뢰스케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호르고스에는 24일 130여명의 난민들이 베오그라드에서 도보로 도착해 “국경을 열어달라”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UNHCR은 15일 공식성명을 통해 헝가리의 국경통제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큰 흐름을 뒤집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헝가리 외에도 발칸반도 국가들은 EU 가입국과 비가입국에 관계없이 국경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난민 9만명을 받은 오스트리아는 올해 난민을 3만7,000명으로 제한하기 위해 철조망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최근 극우파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가 대선에서 선전하며 집권 사회민주당과 국민당 연정을 압박한 데 따른 변화다.
한때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에 대항해 EU의 대 난민 포용정책을 주도하던 독일 역시 최근 일주일 내 이민자들의 테러가 4건이나 발생하면서 곤란한 상태에 처해 있다. 당초 수년 동안 최소 5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장담했던 메르켈 정부가 결국 노선 변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장 메르켈 총리의 지지기반인 집권 기독민주당(CDU)ㆍ기독사회당(CSU)연합 내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스테판 메이어 CSU 내무 대변인은 25일 “국경을 넘어오는 모든 난민을 통제할 수 없다”라며 “(난민정책)개선의 여지는 많이 있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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