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개혁은 역대 어느 정부든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빼 든 이슈이다.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출발한 김대중 정부가 ‘규제를 반으로 줄인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규제개혁을 추진하여 OECD 등 국제사회로부터도 높이 평가를 받은 이후 그 어느 정부도 규제개혁을 기치로 내걸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경제 활성화에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대표적 사례들인 영국의 대처 정부, 미국의 레이건 정부 모두가 규제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규제개혁이 경제활성화에 효과가 있는 것은 검증된 셈이고 우리나라 역대 정부가 이런 정신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다른 선진국에서는 규제개혁이 특정 정부 아래에서 강조된 특별한 정책목표이었던 데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왜 역대 정부가 반복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채택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꾸어 말하자면 역대 정부가 그렇게 꾸준히 규제개혁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민간에서는 규제가 더 늘어나고 더 불편해지고 있다고 불평할까 하는 의문이다.
역대 정부도 규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민간 부문에서 규제를 불편해하는 점에 대해 심각히 고려하지 않은 적이 없지만,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를 규율 하려는 규제의 양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새롭게 만들어지는 규제보다도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규제들 때문에 더 불편해 하는 것을 보면 원인이 여기에 있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관점을 바꾸어서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규제를 만드는 쪽인 공공 부문 (정부와 국회)이 민간 부문(일반 국민, 기업)을 신뢰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규제들이 만들어질 때부터 ‘일반 국민이나 기업들은 그냥 내버려 두면 올바르게 행동하지 않을 것으로 상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일단 ‘가상의 범죄자’로 취급하고 출발하기 때문에 이들 규제를 지켜야 할 때는 어떤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 정부가 즐겨 쓰는 표현 중에 ‘발본 색원’ ‘근원적 처방’ 등의 용어들이 있는데 민간에 대한 신뢰부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규제들은 대부분 사람이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치러야 하는 고통이나 비용에는 관심이 없는 대단히 불편한 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지키기가 어려워진 규제들의 첫 번째 부작용은 바로 ‘일반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 즉, 규제 준수율이 극히 낮아지는 현상이다. 규제를 지키지 않는 것이 일상이 되고 따라서 언제든지 규제 당국이 칼을 빼어 들면 거의 모두가 ‘범죄자’로 전략해 버리는 규제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공공 부문이 민간 부문을 신뢰하지 않아서 불편한 규제들을 만들면 그 준수 과정에서 거꾸로 민간 부문이 공공 부문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현상을 초래하는 셈이다.
요즈음 정부와 국회의 역할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근저에도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사이의 상호 신뢰감 부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거에 만들어진 규제들은 ‘민도가 낮은 사람들을 계도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지금 만들어지는 규제는 공공 부문이 여전히 민간에 대한 신뢰부족의 함정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가 이미 국민소득도 많이 높아지고 글로벌화가 크게 진행된 나라라는 점을 자랑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공공 부문도 민간에 대한 신뢰감을 더 높여야 하고, 그 반대급부로 민간에서도 정부나 국회가 하는 일에 대해 더 높은 신뢰감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김도훈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