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를 하루 앞두고 각국 외교장관이 참석한 만찬행사에서 북한이 처한 국제적 고립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각국 외교장관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한 반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바로 옆 자리 장관과도 간단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고 있는 ARF에 참석 중인 리용호 외무상은 25일(현지시간) ‘돈 찬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갈라 디너(만찬)에 참석했다. 갈라 디너는 ARF 전야제 격 행사로 ARF에 참석하는 각국 외교장관들이 주최국이 마련한 전통 의상을 입고 한 데 모여 격의 없이 인사를 나누는 자리다.
이날 리 외무상은 주최측이 정한 배석에 따라 만찬장 정면 무대를 기준으로 왼편 자리에 앉았다. 리 외무상 왼쪽으로는 파키스탄 외교장관이 자리해 두 핵보유국(?)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리 외무상은 만찬 행사 내내 파키스탄 측과 간단한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오른쪽에 앉은 파푸아뉴기니 장관과도 마찬가지였다.
리 외무상의 약 20m 앞 맞은편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과 나란히 앉았다. 두 사람은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잔을 부딪히고, 웃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여서 리 외무상 측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였다.
북한의 외톨이 신세는 케리 국무장관이 만찬장을 돌아다니며 각국 장관들과 인사하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뤘다. 케리 장관이 파푸아뉴기니 장관과 인사를 나눴고, 순서대로라면 이 외무상과 접촉해야 했지만, 이를 건너뛰고 파키스탄 장관과 아는 척 한 것이다. 리 외무상은 행사 내내 혼자 식사를 하다 만찬이 시작된 지 두 시간 여 뒤에 만찬장을 떠났다.
한편 이날 행사 직전 주최측이 윤 장관과 리 외무상의 자리를 급작스럽게 바뀌는 모습이 포착돼 궁금증을 낳았다. 원래는 두 사람의 자리가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는데, 주최측에서 두 사람 자리를 서로 반대방향으로 떨어뜨려 놓았다.
이와 관련 우리 외교부 측은 “행사장 배석과 관련 주최측에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장의 주최측 관계자들도 배석이 바뀐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이날 리 외무상은 ARF 갈라 디너 관례에 따라 주최측이 준비한 감색 셔츠를 입었으며, 윤 장관은 노란색 셔츠를 입었다.
비엔티안=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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