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면전서 불만 드러낸 왕이
북한 리용호 마중까지 하며 친밀감
“중조 관계 발전 위해 노력할 용의”
중국, 북핵 불용 입장은 여전히 불변
“한국 압박하는 시위성 행보” 분석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25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2년 만에 양국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했다. 왕 부장은 전날 밤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며 의도적으로 파열음을 노출시킨 것과 달리, 리 외무상에게는 환하게 웃는 모습을 연출하며 노골적으로 친밀감을 과시했다. 중국은 북중 양자회담 첫머리 부분을 제3국에 해당하는 한국 언론에 처음 공개하기도 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한 한국 정부와 국내 여론을 흔들고 압박하기 위한 시위성 외교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리 외무상과 왕 부장은 이날 낮 12시(현지시간) 비엔티안의 국립컨벤션센터(NCC)에 마련된 회의장에서 양자회담을 시작했다. 왕 부장은 회의장에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와 리 외무상을 맞이한 뒤 등에 손을 올린 채 다정한 모습으로 회의장으로 향했다. 회의장에서도 왕 부장은 활짝 웃으며 악수하는 장면을 장시간 언론에 노출한 뒤, 리 외무상에게 “(외무상에) 취임한 것을 축하한다. 중조 관계 발전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축전을 보내준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다”며 “앞으로 적극 협력하는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화답했다. 리 외무상의 언급은 이달 초 '북중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조약'(북중 조약) 체결 55주년을 맞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축전을 교환한 것을 뜻한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양자회담은 1시간 가량 진행됐다. 회담 뒤 북한 관계자는 “이번 접촉은 두 나라 사이의 정상적인 의사소통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며 “두 나라 외무상들이 조중 쌍무관계 발전 문제를 토의했다”고만 밝혔다.
전날 밤 이뤄진 한중 양국 회담은 이 같은 북중 회담 분위기와는 180도 달랐다. 왕 부장은 윤병세 장관과의 회담에선 굳은 표정으로 “한국 측의 행위는 쌍방의 상호 신뢰의 기초를 훼손했다”며 5분간 차가운 발언을 이어가며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왕 부장은 윤 장관과 눈도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였고 의례적인 반가움의 표시도 없었다. 윤 장관이 발언하는 동안에는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괸 채로 듣는 모습을 보이는 외교적 무례까지 나타냈다.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RF 당시 ‘한중 밀월, 북중 냉랭’의 3국간 관계가 한미의 사드 배치 결정 이후 급변하고 있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인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보유국 주장과 북핵불용의 중국 입장이 여전히 배치돼 북중 관계가 단기간에 개선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의 행보도 북한의 핵 도발을 관리하는 동시에 한국에겐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시위성 여론전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한중 회담에서 양국은 악수하는 모습만 공개하기로 협의했으나, 중국 측은 “회담장이 크다”는 이유로 한국 취재진 허용 숫자를 늘린 뒤 왕 부장의 발언을 가감 없이 공개했다. 중국 측은 이날 북중 회담에선 현장에 있던 한국 취재진의 입장을 허용하는 전례 없는 조치까지 취했다. 사드 배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의도적으로 남북을 차별 대우하며 관계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한편, 윤병세 장관은 이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나 북핵 대응 공조 체제를 재확인하면서 사드 배치가 한미 연합 방위력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윤 장관은 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 장관과도 만나 위안부 재단 설립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비엔티안(라오스)=조영빈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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