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활동 중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테너 강요셉이 올 여름 국내에서 한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토대로 1846년 작곡한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의 콘체르탄테(콘서트 형식의 오페라) 전막 공연(8월 19일 예술의전당)에서다. 국내에서는 1999년 괴테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오페라 버전으로 초연된 후 공연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이 제작한 동명의 작품에서 각각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로 분해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다시 한 무대에 서는 두 사람을 각각 만났다. 향후 5년간의 주요 일정이 정해졌을 만큼 최고 주가인 이들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눈빛에는 겸손함이 흘렀다.
악의 끝을 보여드리죠
“이 덥고 습한 날씨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바리톤 샤무엘 윤은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2004년부터 매년 여름을 (독일)바이로이트에서 보냈다”며 “한국에서 여름 맞는 게 12년만”이라고 말했다. 2004년 오페라 ‘파르지팔’의 단역인 두 번째 성배 기사로 ‘바그너 음악의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데뷔했고, 2012년 동양인 최초로 이 축제 개막공연의 주역이 되면서 오페라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주인공인 네덜란드 선장 역할이었다. 애초 주역이었던 러시아 출신의 바리톤 예브게니 니키틴이 몸에 새긴 ‘나치 문양’이 문제가 돼 최종 리허설 6시간 전에 사무엘 윤이 대타로 낙점됐고, 공연이 성공을 거둔 후 이듬해 개막작에 정식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사무엘 윤은 “아침에 연락 받고 저녁에 당장 무대에 설 수 있는 작품이 약 20개”라며 “선장 역할은 2시간 후에도 무대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365일 중에 300일을 노래해요. 남자 성악가 전성기가 40대라고 하는데 제 나이가 올해 46살이에요. 공부해야 할 배역보다 맡아본 배역이 더 많죠. 5, 6개 극장에서 쉰 번쯤 올라간 배역이 20개쯤 되죠. 몸에 젖어서 저만의 색깔로 부를 수 있는 배역들이에요.” 그가 종신 성악가로 17년째 근무하고 있는 쾰른오페라극장은 독일 주요 5개 극장 중 한 곳이다.
8월 공연하는 ‘파우스트의 겁벌’ 역시 “두 시간 후에도 부를 수 있”을 만큼 자신 있는 배역 중 하나다. “괴테 소설 ‘파우스트’로 만든 오페라가 3개인데 베를리오즈 작품이 맨 먼저 작곡됐어요. 작곡가가 하고 싶은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죠. 심지어 교향곡도 들어가 있어서 오페라보다 콘체르탄테로 많이 공연돼요. 초연도 콘서트 형식이었고요.” 그가 맡은 역은 주인공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는 “악한 게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우리가 생각하는 선악의 기준, 악마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해 보이겠다”고 말했다.
고음의 끝을 보여드리죠
“한 15개?”
22일 서울 반포동 한 호텔에서 만난 테너 강요셉에게 똑같은 질문(당장 무대에 설 수 있는 작품이 몇 개인가)을 던지자 장난기 가득한 대답이 돌아온다. “아침에 전화 받으면 악보도 한 번 보고 올라 갈 수 있다”는 농담까지 섞어서.
사무엘 윤이 2012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이후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면, 강요셉은 이듬해 말 그 비슷한 일을 겪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라보엠’ 공연시작 4시간 전 테너 비토리오 그리골로의 대타로 로돌포 역을 맡은 것. 극장 도착 7분 만에 분장을 끝내고 무대 올라보니 상대역인 미미가 세계 최정상의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였다고. 이 공연의 호평으로 빈 국립오페라의 정식 제안을 받고 2014, 2015년 ‘라 보엠’에 출연하는 등 세계 각지 유명 오페라극장의 초청을 잇따라 받고 있다. “빈 오페라 연출이 전통적인 방식이니까 가능했죠. 배역이 반드시 할 만한 동작들이 가사에 있어요. 예민하다는 게오르규도 반주 연주 때 일일이 지시문을 알려줬고요.”
이탈리아 유학 후 10여 개 콩쿠르에서 줄줄이 낙방하다 마지막 도전에서 우승해 쾰른 오페라극장에 연수단원이 된 사무엘 윤과 달리, 강요셉은 유학 초반부터 술술 일이 풀렸다. 24살인 2002년부터 베를린 도이체오페라극장에서 전속가수로 활동하다 프리랜서로 독립한지 4개월 만에 저 기회를 꿰찼다. ‘오페라 속 테너 역할은 대개 왕자나 영웅인데 동양인 배우로 역할 따낼 때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그래서 서양 성악가들이 못하는 역할로 시작해 천천히 활동 반경을 넓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강요셉의 무기는 테너들이 한 번도 내기 힘들다는 하이C를 자유자재로 ‘불러 올리는’ 목소리. 극중 하이C가 무려 28번이 나오는 로시니 오페라 ‘빌헬름 텔’ 속 아르놀트 역할이 그의 단골 배역으로 2014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오페라극장에서 노래한 후 세계 각국의 아르놀트 역을 거의 다 꿰찼다.
‘파우스트의 겁벌’에서 그가 맡은 역은 주인공 파우스트다. 삶의 끝자락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 욕망에 눈을 뜨고, 운명의 여인 마르그리트를 알게 되지만 그녀를 잃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비극적인 역할이다. 이 작품에서도 ‘미친 고음’을 들을 수 있냐는 질문에 “그 역할은 하이C보다 반음 높은 하이C샵이 나온다”고 했다. “하이C도 악보 어느 부분에 있느냐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요. 로돌포 역에서는 두 마디 쉬고 하이C가 나오는데 반해 아르놀트 역은 거의 등장 때마다 하이C를 불러 훨씬 힘들죠. 파우스트는 저음에서 시작해 점점 올라가는 최고 난도의 노래를 소화해야 돼요. 와이프가 객석에서 노래를 들으면 ‘고음이 어디까지 올라가나 들어보자’ 하는 마음이 절로 든대요.”(웃음)
(070)8879-8485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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