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수수료 챙기고 관리는 뒷전
위조품 팔다 적발된 입점업체
부정 사실 몰라 영업 계속되기도
“장소만 빌려줘 보상 의무 없다”
마트 브랜드 믿은 소비자만 골탕
25일 오후 서울 노원구 H마트 내 한 귀금속 매장. 20대 손님이 커플링을 찾자 점원은 진열대에 있는 상품을 꺼내 보였다. 그가 내민 제품은 유명브랜드를 베낀 반지. 점원은 “요즘은 C사 디자인이 잘 나간다”며 명품이라는 점을 극구 강조했다. 그러나 이 매장은 지난달 15일 시가 1,500만원 상당 명품 위조품 10여점을 팔다 경찰에 적발된 곳이다. 이후 서울 노원경찰서가 점주 A(54ㆍ여)씨를 상표법위반 혐의로 기소의견을 달아 검찰에 송치했지만, 그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마트 측이 적발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탓이다. H마트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임대매장 상품까지 관리할 책임은 없다”며 남의 일처럼 말했다.
대기업 대형마트 입점 매장에서 위조 상품 거래가 끊이질 않고 있으나 마트 측 관리 소홀로 애꿎은 소비자만 골탕을 먹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수수료 장사에만 골몰할 뿐, 임대 업체의 부당 행위에 책임을 묻지 않는 법 규정을 내세워 소비자 피해에 눈을 감고 있는 실정이다.
위조 상품 판매를 둘러싼 분쟁은 심심찮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전남 여수 L마트에서도 유명브랜드를 본 뜬 위조 가방이 판매돼 한 바탕 소란이 일었다. 당시 “마트를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고 피해자들이 항의했지만 마트 측은 “우리는 판매 장소만 빌려줘 보상 의무가 없다”며 매장과 소비자 간 다툼으로 몰아 갔다.
대형마트가 매장상품 관리에 나몰라라 하는 이유는 입점 업체들이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달 매출에 비례해 임대수수료를 마트 측에 지불하는 것 외에 제품 공급과 판매 등 모든 운영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게다가 대규모유통업법 상 마트의 검수 의무 대상은 제조사로부터 직접 납품 받은 물품으로 제한돼 있어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롭다. 제품에 문제가 생겨도 마트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셈이다.
물론 위조 여부를 걸러내는 내부 감시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마트마다 자체적으로 임대매장 상품을 점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H마트도‘각 지점은 입점 매장의 상품이 정품인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을 마련해 놓았다. 위조품 판매가 2회 적발되면 임대차계약 해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행이 지점 재량에 맡겨져 있는데다 지점들도 입점 업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현장 점검을 실시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지점에서 상품을 꼼꼼히 살펴보려 해도 임차인들이 ‘감시하느냐’며 불쾌함을 토로할 때가 많아 정품보증 문서를 확인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소비자들이 입점 업체가 아닌 매장을 운영하는 대기업을 믿고 물건을 사는 점을 감안할 때 유통업체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도록 관련 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사 분쟁에서 마트 측 과실을 일부 인정한 법원 판단도 이미 나온 상태다. 2008년 서울 중앙지법은 일부 지점 임대매장에서 유명 의류업체 위조품을 판매한 A마트에 대해 “마트가 직접 판매 전단지를 배포하고 임대매장과 마트 직영 가판대가 외관상 다를 게 없다면 소비자들은 유명할인점을 믿고 매장 상품을 구입했다고 볼 수 있다”며 해당 의류업체에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별하는 것은 유통업체의 의무인 만큼 매장 제품 사전 관리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관계자도 “대형마트는 개인사업자를 단순 중개하는 인터넷쇼핑몰과 달리 매장과 협업해 매출을 발생하는 구조”라며 “적극적 개입을 통해 마트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이윤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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