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에 가까워졌을 때 물이 부글부글 끓는 모습이랄까. 쉰을 훌쩍 넘긴 사내는 웃통을 벗은 채 베이스를 메고 ‘벼룩’처럼 팔짝팔짝 뛰어다니며 흥을 돋웠다. 1999년 미국 우드스톡 공연에서 알몸에 양말 하나만 걸친 채 나서던 때의 도발은 없었지만, 여전히 열정이 넘쳤다. 그가 오른손으로 튕겨 낸 베이스의 연주 소리는 스피커를 뚫고 나올 듯 육중했고, 때론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화려한 기타 연주에 가려져 조명 받지 못했던 베이스의 멜로디가 만개해, 마치 놀이기구를 타듯 흥겨운 리듬의 축제에 초대된 기분이었다.
지난 22일 경기 이천시 지산 리조트. 미국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베이스 연주자 플리(마이클 피터 밸저리·54)는 ‘2016 지산 밸리 록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지산밸리)에서 ‘베이스 달인’으로서의 진가를 보여줬다. 악동 같은 모습도 여전했다. 온 몸이 문신투성이인 플리는 한국 관객의 앙코르 요청에 물구나무 자세로 무대에 등장해 웃음을 줬다. ‘아재 파탈’이 따로 없다. 플리는 “K팝을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며 관객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여유를 보여주기도 했다.
24일까지 사흘간 열린 지산밸리에서의 백미는 33년의 내공이 빛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무대였다. 2002년 내한 공연 후 14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밴드의 멤버들은 세월의 공격을 피해간 듯 활기찬 무대를 꾸렸다. 지난 21일 내한 관련 기자회견에서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야수 본능이 남아있다”며 기대를 당부한 밴드 멤버들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1983년 데뷔 원년 멤버인 플리와 드러머 채드 스미스(55)는 찰떡 같은 호흡으로 밴드 특유의 리듬감 넘치고 박력 있는 연주를 이끌었다. 랩을 하듯 노래하는 보컬 앤소니 키에디스(54)는 특유의 감칠맛 나는 창법으로 관객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스카 티슈’, ‘캘리포니케이션’, ‘바이 더 웨이’, ‘기브 잇 웨이’ 등으로 이어진 밴드의 히트곡 퍼레이드에 관객들은 환호로 화답했다. 실시간 연주 모습을 애니메이션처럼 무대 스크린에 펼친 화려한 영상은 공연의 볼거리를 더했다. 다만 원년 멤버인 데이브 나바로와 존 프루시안테의 탈퇴 후 2010년 새 멤버로 합류한 조시 클링 호퍼의 기타 연주가 밴드의 리듬감을 좇아 가지 못해 아쉬웠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등 영국과 미국 음악시장에서 가장 ‘핫’한 전자음악 듀오 디스클로저 등이 처음으로 내한 무대를 선보인 지산밸리에는 사흘 동안 약 9만 명이 몰렸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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