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한국 취재진에 의도적으로 파열음 노출
윤병세, 중국 고사성어 인용해가며 사드배치 설명에 진땀
24일(현지시간) 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의 분위기는 찬바람 그 자체였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 이후 처음으로 만난 윤병세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사드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특히 왕 부장은 한국 취재진을 대상으로 의도적으로 한중간 파열음을 노출해 우리 측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왕 부장은 이날 오후 10시20분께 중국측 대표단숙소인 돈찬 팰리스 호텔에서 회담이 시작되자 작심한 듯 한국의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최근 한국측의 행위는 쌍방의 호상 신뢰의 기초를 훼손했다"며 "이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동료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측이 우리사이의 식지 않는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 행동을 취할지에 대해 들어보려고 한다"며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불만 표출과 동시에 이에 대한 수습 방안까지 주문했다. 사드 배치 결정을 철회하라는 압박인 셈이다.
왕 부장은 굳은 표정으로 준비된 원고를 읽듯 5분여간 쉼 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누가봐도 작정하고 준비한 발언이었다. 왕 부장은 발언 동안 윤 장관과 눈도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였다. 양자회담 시 의례적으로 연출되는 양측 대표 간 반가움의 표시도 찾기 어려웠다. 왕 부장의 발언이 끝난 뒤 윤 장관은 “비록 우리가 어려움이 있습니다만 긴밀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양국 정부와 민간의 신뢰에 입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이러한 도전들은 그동안 우리가 깊은 뿌리를 쌓아왔기 때문에 극복하지 못할 사안들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이 윤 장관의 발언을 듣던 중 불만이 있는 듯 손사래를 치거나, 턱을 괸 채로 발언을 듣는 등의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양국은 당초 양측이 악수하는 모습만 취재진에 공개하기로 협의했으나, 중국 측이 회담장에서 “회담장소가 크니 (취재진이) 14명까지 들어갈 수 있다”며 한국측 취재진 허용 숫자까지 늘렸고 왕 부장의 발언도 공개했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한중간 사드 파열음을 여론에 부각시키기 위해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후 비공개로 진행된 회담에서도 중국은 사드 배치에 대한 강한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 장관은 사드 배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이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고 외교부가 전했다. 윤 장관은 특히 '추신지불(抽薪止沸) 전초제근(剪草除根)’(‘아궁이 장작불을 빼면 물을 식힐 수 있고, 풀을 없애려면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뜻)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사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장관은 또 ‘산을 만나면 길을 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뜻의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탑교(遇水搭橋)'라는 고사성어도 언급했다. 양국 관계의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를 잘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었지만, 중국 측은 사드 배치가 한중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하며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한중 회담은 당초 예정된 1시간 30분 보다 짧은 1시간 만에 끝나 양국간 냉랭한 분위기를 여지 없이 보여줬다.
비엔티안=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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