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이 코앞이다. 올림픽 기간(8월6일~22일)에 맞춰 브라질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아마존 하류 알테 도 차오(Alter do Chao), 일본 축구팀이 두 차례 예선전을 치르는 마나우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다. 가만히 있어도 불쾌지수가 펌프질하는 마나우스에 비해 알테 도 차오는 해변의 청량감이 찰랑찰랑 밀려 오는 곳이다.
알테 도 차오는 ‘브라질의 카리브해’란 별명을 가진 마을이다. 브라질 북부 산타렝에서 남서 방향으로 33km 떨어진, 아마존이 생채기를 낸 지대 중 하나다. 아마존의 최대 지류인 타파조스(Tapajos)강 어귀에 있다. 여행자는 이곳에서 깊은 아마존 정글로 보트 탐험에 나서거나 고립된 인디오 마을로 가는 시동을 건다.
아마존 유람선으로 닿은 산타렝(☞아마존 여행2 바로가기)에선 한 가지 미션이 있었다. '질(Gil Serique) 찾기'다. 질은 아마존 정글탐험 전문가로, 세계적인 여행리뷰 사이트인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에서 알테 도 차오의 매력 중 5위를 꿰차고 있다. 아무리 손바닥만한 마을이라 해도 사람이 지역의 매력 포인트로 오르는 건 이례적이다. 산타렝에 있다는 그의 주소지를 찾아가봤지만, 후덕한 아줌마의 문전박대만 받았을 뿐이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 실패한 뒤 우린 서둘러 알테 도 차오로 넘어갔다.
새로운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숙소를 찾는 일이다. 탕탕을 배낭과 함께 정류장에 남겨두고, 20여 분 발품이면 충분한 마을의 모든 숙소를 홀로 섭렵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해변 앞 정체불명의 장소. 론리 플래닛과 러프 가이드, 풋 프린트 등 기라성 같은 가이드북을 새긴 벽화가 여행자를 부르고 있었다. 쓱 들어가니 한 독일인 커플이 새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이어 주인인 듯한 노장 역시 약속한 사람을 만난 듯 환영 인사를 했다.
"숙소를 찾는데 말이지.... 여기 숙소인 건 맞니??"
숙소 찾기 전문가의 눈은 야외 거실과 독채, 정원, 해먹, 서핑보드 등 동선과 편의시설을 스캔하고 있었다.
"글쎄, 숙소라면 숙소지. 잘 곳은 있어."
"진짜 자도 돼? 얼마인데?"
"네가 원하면! 네가 원하는 대로!"
대낮에 뜬 보름달 같이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그는 자신을 질이라 소개했다. 남미의 ‘노 프라블럼(No problem) 정신’을 못미더워하던 차에 탕탕의 손을 이끌고 이곳으로 직진했다. 찌리릿 전기 충격이 왔다.
'혹시... 우리가 찾던 그 질인가?!'
그렇게 우린 알테 도 차오의 유명인사와 한 지붕 아래 살게 되었다. 알테 도 차오는 사실 바다와는 비행기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해변 마을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마을 자체는 해변 마을의 게으른 천성을 타고 났다. 역사를 아무리 털어봐도, 부를 위한 경제 활동의 흔적이 없다. 20세기 초 포드 자동차의 창립자 헨리 포드가 고무나무를 이용해 플랜테이션을 만들겠노라 시늉한 게 유일무이하다. 이조차 실패로 돌아간 뒤 오직 자연을 조망하며 카이피리냐(브라질 전통주인 40도 '카샤사'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를 마시는 일 외엔 별달리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백수의 마을에도 해는 떴다. 20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관광사업 덕이었다. 그리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질의 집 정면으로는 길게 혀를 뺀 ‘사랑의 섬(Ilha do Amor)’이 보인다. 계절에 따라 섬은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다. 1월부터 6월까진 백사장이 날씬해졌다가 8월부터 12월까진 요요 현상을 겪듯 덩치가 커진다. 카누나 패들 보드(stand-up paddle)를 탄 커플이 이따금씩 섬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사랑의 섬일까? 질은 아예 노골적인 이유를 내세웠다. “여기가 ‘사랑의 섬’인 건 말이지… 밤이 되면 짝짓는 남녀의 소리가 울려 퍼지기 때문이지…” 숙소 어디에도 몸 붙일 데 없는 여행자의 터가 바로 사랑의 섬이란 이야기였다. 그날 밤 나의 귀는 창문에 바짝 붙어 있었다.
질의 집은 알테 도 차오의 축약판이다. 자연의 혜택을 삶으로 흡수했다. 정원이 8할을 차지하는 그의 거처는 자급자족의 온상이다. 야외 거실은 해변이 보이는 정원을 통과해 방이 있는 독채와 연결된다. 그 정원엔 질의 평생 잠자리인 해먹이 걸려 있다. 망고와 라임, 카쥬 등 탐스런 과일 나무들이 집을 관통한다. 슈퍼에서 과일을 사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로 느껴질 정도다. 세계는 24시간이 하루라 말하지만, 이곳의 시계는 좌로 90도 기울여있는 데다가 아예 바늘이 뽑혀 있다. 그리곤 척 말한다. "대체 누가 상관하는데(Who cares)?"
대부분 시간을 숙소에서 보냈다. 두문불출이라 해도 은거와는 거리가 멀다. 질의 대문은 잠그기보다 열리는 기능에 충실했다. 사방으로 트인, 동물의 집이자 놀이터였다. 밤낮으로 질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사람 외에도 낯선 손님들이 제법 많았다. 낮이면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가 숨바꼭질을 청하고, 밤이면 손톱만한 개구리와 꼬마도마뱀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드는 게임을 거듭 했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해변 아닌 해변을 넋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해질녘이면 질이 손수 제조한 카이피리냐로 천국 가는 길이 쉬웠다. 실질적인 이곳 살림꾼인 세우스와 ‘서바이벌’ 포르투칼어도 학습했다.
더부살이 3일째 되던 날, 질의 정글투어 계획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소설 '스타트랙'의 작가 앨런 딘 포스터의 책에 본인의 이름이 거론된 자랑을 시작으로 '오빠만 믿어'식 설명이 이어졌다. 가격은 화끈하고도 잔인했다. 참가 인원에 따라 1인당 하루 130~150달러! 질의 친구라던 독일인은 마나우스에서는 90헤알(약28달러)이었다고 속삭였다. 아, 이건 ‘프라블럼(problem)’이었다. 아무리 계산기를 두들겨봐도 가랑이 찢어질 거란 결론에 닿았다. 하긴 그의 투어 사진을 보니, 황혼 세대가 대부분이었다. 삶의 투지 따윈 싹 사라진, 주머닛돈과 비례한 넉넉한 뱃살이 그를 증명했다. 질과 우리의 화폐 단위가 첨예하게 달랐다. 과연 질이 말한 '원하는 대로'의 방값은 얼마일까? 애매하고도 오묘한 감정이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날 때란 걸 직감했다.
소낙비가 내리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질이 한 커플만 데리고 정글로 출정하는 날, 이사하기로 했다. 그와 막 출발하려던 커플은 그가 제시한 '150'이란 화폐 가치가 달러가 아닌 헤알인 줄 알았다고 귓속말했다. 우린 이사와 동시에 이반(Ivan)을 수소문했다. 버스에서 마주친 히피 여인이 이곳 투어의 절대지존자라며 가르쳐준 가이드의 이름이었다.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는 그렇게, 또다시, 시작되었다.
강미승 여행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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