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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온(高溫) 재난

입력
2016.07.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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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여름 서울은 연일 계속된 폭염으로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14일 연속 낮 최고기온이 폭염 기준인 섭씨 33도를 웃도는 등 폭염일수가 사상 최장인 29.7일이나 됐다. 열대야도 35일이나 발생했다. 일사병 사망자가 속출했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계란 프라이가 가능했다. 공교롭게 겹친 김일성 사망(7월8일)을 놓고 일사병으로 죽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 해 기록적 폭염으로 전국에서 평소 여름보다 3,384명이 더 숨졌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사망자의 14배였다.

▦ 노인과 어린이, 만성질환자에게 폭염은 치명적이다. 폭염기간 65세 이상 노인 사망률은 평소의 2배나 된다. 인체는 보통 하루 1ℓ의 땀을 흘린다. 그런데 무더위로 평소보다 많은 땀을 흘리면 혈액순환과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긴다. 심장이 피부 쪽으로 혈액을 보내기 위해 더 많이 뛰고, 상대적으로 다른 부위에 혈액공급이 부족해져 심장병 뇌졸중의 위험이 커진다. 기온이 32도 이상이면 뇌졸중은 66%, 심장병은 20%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한 여름에 기온이 1도 더 오르면 사망률은 16% 늘어난다.

▦ 태풍이나 호우는 인명피해를 낳고 건물을 부수며 산사태를 일으킨다. 반면 폭염은 시각적 피해가 잘 드러나지 않고 국민들도 위험하다는 인식을 별로 못한다. 그래서 더 무섭고 ‘소리 없는 살인자’로 불리는 까닭이다. 실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낳은 기상 현상은 태풍이나 호우가 아닌 이상 고온이다. 1994년 한국의 폭염 사망자 수는 모든 종류의 자연재해를 통틀어 역대 최고였다. 세계의 온도는 지난 100년간 0.74도 상승했으나, 우리나라는 이보다 1.5배 빨리 기온이 오르고 있다. 고온 재난이 일상이 될 우려가 크다.

▦ 냉방 혜택을 못 누리는 국내 에너지 빈곤층은 130만 가구. 에너지시민연대 조사 결과, 이들이 사는 집안 온도는 외부온도와 별 차이가 없었고 선풍기 한 대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름 나기가 목숨을 건 사투인 셈이다. 무더위를 재난으로 인식하지 못하니 정부 대응책도 느슨하다. 겨울에 난방을 지원하는 제도(에너지 바우처)는 있어도 냉방 지원에는 손을 놓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도 인터넷 정보에서 소외된 노인층이나 노숙인에겐 무용지물이다. 찾아가는 서비스 등 고온 재난 대책이 시급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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