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등록문화재제도가 만들어진 지 15년이 흘렀다. 근대유산은 조선시대 문화유산과 달리 기능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활용이 용이한 재료와 구법으로 인해 ‘보존’과 함께 ‘활용’이 화두가 된다. 제도 도입 후 500여 건의 근대건축유산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활용의 파급효과에 대한 기대로 사회적 관심을 받는 근대유산이 있다. 바로 ‘근대산업유산’이다.
식민지하에서 근대사회로 진입한 우리의 근대는 산업혁명을 거쳐 시민사회의 틀을 구축한 서구와 다르다. 이로 인해 용도가 폐기된 후 유령도시화된 지역의 재생 수단으로 거듭나는 서구의 산업유산과 달리, 우리 산업유산은 대부분 용도 폐기 전 활용이 모색된다. 옛 당인리발전소(현 서울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인 예다. 1930년에 준공된 당인리발전소는 1970년대까지 ‘경인공업벨트’와 함께 산업화의 상징으로 소개되던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산업 역할이 소멸되고 지역의 애물단지로 인식되면서 문화발전소로의 전환을 모색 중이다.
‘문화의 시대’를 맞아 ‘당인리발전소의 문화발전소화’를 공약한 대통령이 당선되며 당장 문화공간으로 바뀔 것 같았지만, 그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임기가 끝나서일까? 아니면 문화발전소로서의 가치를 과장했던 탓일까? 일이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논의과정을 살펴보자.
문화발전소 실천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빠르게 일을 추진했다. 건축ㆍ문화예술ㆍ근대문화재 등 전문가들이 모여 근대산업유산의 가치에 기초한 문화발전소 만들기에 뜻을 모았다. 발전소의 전략적 가치라는 벽에 부딪쳤지만, 여론은 1조원이 넘는 지하발전소 묘안을 만들었다. 산업유산인 발전소는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지하와 지상엔 각각 신규 발전소와 공원을 만들겠다는 큰 그림이 그려졌다.
그러나 근대유산의 가치가 문화발전소 추진의 근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궤도에 오른 문화발전소 추진과정에서 근대유산의 정체성과 가치를 판단할 전문가가 소외됐다. 예산 확보도 최근 난관에 부딪쳤다고 한다. 예산 담당 기관으로부터 예산이 부족하니 2개의 발전 설비 중 하나만 활용하라는 권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당황스러운 이야기다. ‘돈이 없으니 근대유산 중 일부만 활용해라.’ 발전소의 손과 발이 잘리고 몸통의 일부만 남게 되면, 문화발전소가 불구가 되지는 않을까.
당인리발전소는 주 발전설비뿐 아니라 주변 부대시설과 한강과 만나는 곳이라는 장소성 등이 결합해 근대유산의 진정성을 갖춘 곳이다. 예산을 최우선시하는 활용계획이 수립된다면 이러한 문화유산의 진정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문화유산의 가치는 사업 포장을 위한 수단이 돼서는 안되며, 근대유산의 가치를 판단할 전문가가 일회성 조언을 하는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지켜냄과 동시에 발전시설에 대한 미래 요구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진정한 문화유산 활용에는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안창모 경기대대학원 건축설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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