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지원자에 담보ㆍ보증 없이
4000만원까지 연 1%로 빌려줘
‘그린사이클’로 친환경 경영 역점
핑크리본마라톤 16년째 진행
한부모 가정의 가장인 장영옥(52)씨는 지난해 11월 다시 문을 연 미용실이 ‘희망’이다. 장씨는 사업하던 남편이 진 빚 때문에 25년간 운영하던 미용실과 집을 모두 잃고, 4년 전 충남 천안으로 이사했다. 남편과는 이혼했고, 파산 신청까지 한 상황이라 생계가 막막했다.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꿨고,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미용실 재취업도 어려웠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자녀 둘을 동생에게 맡기고, 장씨는 시장 식당에서 일했다. 그러던 중 구인구직 정보지를 넘겨보던 장씨의 눈에 띈 게 ‘희망가게’ 모집공고였다. 아모레퍼시픽이 후원하고 아름다운재단이 운영하는 ‘희망가게’는 생활형편이 어려운 한부모 가정의 여성가장에게 창업 대출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의 지원대상으로 선정된 장씨는 보증금 2,000만원과 시설비 등 2,000만원을 받아 천안시 쌍용동에 221번째 희망가게를 열었다. 장씨는 8년 뒤 일시불로 상환해야 하는 보증금(2,000만원)을 제외한 대출금 2,000만원을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매달 36만6,660원(이자 3만3,330원 포함)씩 갚아나가고 있다. 그는 “파산 상태라 어디서도 돈을 빌릴 수 없었는데, 굉장히 싼 이자(연 1%)에 대출을 받아 미용실을 열 수 있었다”며 “4년 전만해도 하루아침에 일터와 집을 날리고 몸만 겨우 빠져 나왔는데 이젠 가게도 자리를 잡아 지난 5월에는 월 수입이 미용실 개점 첫 달과 비교해 3배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희망가게는 저소득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도와 스스로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저소득층 대상 무담보 소액대출제도) 사업이다. 여성ㆍ아동 복지 지원에 힘썼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 서성환 선대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유족들은 받은 유산 중 일부를 기부해 ‘아름다운 세상 기금’을 마련했고, 여기서 ‘희망가게’ 사업이 시작됐다. 2004년 1호점이 문을 연 이후 식당, 미용실, 개인택시, 매점, 세차장, 천연비누 제조 등 다양한 분야의 창업을 지원해 현재 280여 곳의 희망가게가 전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희망가게를 통해 자립에 성공한 한부모 가정의 구성원은 770명(자녀 포함)에 이른다.
아모레퍼시픽은 공모를 통해 선발된 희망가게 창업 지원자에게 담보ㆍ보증이 없더라도 최대 4,000만원을 연 1%의 상환금리로 빌려준다. 창업자의 신용등급도 따지지 않는다. 창업자들에게 받은 이자는 또 다른 한부모 여성 가장을 위한 창업 지원금으로 쓰인다. 지원금 뿐 아니라 창업교육, 상권ㆍ입지 분석, 개업 후 사후관리 등 전문적인 창업컨설팅도 제공한다. 법률ㆍ재무ㆍ심리 상담과 기술교육비 등도 지원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실천과 유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례”라며 “앞으로도 신용 회복 중이거나 회생ㆍ파산 신청 등으로 금융권 대출이 어려운 여성 가장들의 자립을 계속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아모레퍼시픽은 ‘그린사이클’ 캠페인을 통해 환경경영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벌여왔던 기존 친환경 사회공헌 사업인 ‘공병수거 이벤트’를 한 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2009년 ‘이니스프리’ 매장에서부터 시작된 공병수거 이벤트는 다 쓴 제품의 공병(유리, 플라스틱 용기)을 가져오면 아모레퍼시픽의 멤버십 포인트를 1개당 500점씩 적립해주는 방식이었다.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2010년 ‘아리따움’ 매장과 대형마트, 백화점에 이어 2012년에는 ‘에뛰드하우스’를 포함한 전국 아모레퍼시픽그룹 매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수거된 공병은 총 920톤으로, 어린 소나무 9,958그루를 심은 것과 같은 효과를 거뒀다.
생활 속에서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아모레퍼시픽은 이를 다시 새 제품으로 탄생시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업사이클링’으로 발전시켰다. 그린사이클 캠페인은 화장품 용기가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수거한 후 다시 재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2014년 6월 공병을 활용해 제작한 작품 ‘모아나무’를 서울 명동 ‘프리메라’ 매장에 전시했고, 10월 ‘핑크리본 사랑마라톤’ 서울대회에서는 화장품 공병으로 제작한 조형물을 선보였다. ‘이니스프리’는 공병을 수거해 식물을 키우는 화분으로 재탄생시키는 ‘에코 그린 팟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2000년 기금 전액을 출자해 국내 처음으로 유방건강 비영리 공익재단인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여성들의 유방 건강을 위한 핑크리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유방암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16년째 진행 중인 핑크리본 사랑마라톤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2001년부터 15년간 27만5,000여명이 참가해 29억원의 기부금을 재단에 전달했다. 같은 기간 유방건강강좌, 유방암 무료 예방 검진에도 48만9,000여명이 참여했다. 저소득층 유방암 수술ㆍ치료비 지원에 23억원, 유방 건강 관련 학술연구에 14억원을 지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창업자와 전문경영인이 사회공헌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실천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업문화로 정착됐다”며 “사회적인 책임경영을 실천하는 데 밑바탕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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