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7월 23일, 강한 바람을 몰고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페이’는 국내 최대의 해양 오염사고를 일으켰다. 오후 4시 전남 여천군 남면 소리도 해상을 운항 중이던 유조선 ‘씨프린스호’는 태풍을 만나 선체가 기울었고 폭발음과 함께 기관실 쪽이 파손됐다.
재앙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불붙은 배에서 흘러 나온 벙커시유는 1천 400kl에 이르렀고 원유 2만 9,000kl는 광양만 일대와 다도해 국립공원 해상을 온통 시커먼 기름띠로 오염시켰다. 남서풍과 조류를 탄 기름띠는 사고지점인 소리도 등대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퍼지면서 양식장 밀집지역인 경남 남해 앵강만과 전남 고흥 가막만 일대까지 초토화 시켰다.
씨프린스호는 태풍주의보를 접하고도 하역작업을 계속하다 피항할 기회를 놓쳤고 조기방제작업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 사고 발생 사흘 후에야 대책본부가 구성됐고 전문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싱가포르에서 공수한 수송기로 유화제를 살포하는 등 해난사고 초동 대처의 원시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2차 오염으로 해양생태계마저 파괴된 것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씨프린스호는 그 해 11월, 좌초 125일만에야 선박구난전문회사에 의해 사고지점에서 벗어났다. 손용석 멀티미디어부장 보도사진연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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