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광둥(廣東)의 작은 어촌마을 우칸(烏坎)촌의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이 5년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5년 전 토지 강제수용 사태 속에서 ‘우칸촌의 기적’을 만들어냈던 린쭈롄(林祖戀) 전 우칸촌 당서기가 구속되면서다.
22일 광둥성 산웨이(汕尾)시정부 발표에 따르면 산웨이시 인민검찰원은 전날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아온 린쭈롄에 대한 구속을 결정했다. 중국에서 구속 결정은 범죄 증거가 명확하고 재판에서 징역형 이상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 내려진다.
2011년 9월 촉발된 우칸촌의 토지 강제수용 사태 속에서 시위를 주도한 린쭈롄은 이후 주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당서기에 임명됐다.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어촌마을인 우칸촌 주민들은 집단소유 토지 33만여㎡가 자신들 모르게 부동산업자들에게 헐값에 팔려나간 것에 분노해 격렬한 시위를 전개했고, 공안을 투입해 강력 탄압하던 당국은 4개월간 계속된 시위에 결국 굴복해 주민들의 자유투표를 통한 촌민위원회 구성을 용인했던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식 풀뿌리 민주주의’ 모델로 주목받았다.
우칸촌 사태는 도시화 과정에서 토지를 빼앗기고 도시 하층민으로 전락해온 농민들의 불만이 직접적으로 터져나온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토지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마을 주민 간 이해 충돌은 계속됐다. 사실 토지환수 작업은 일개 촌민위원회가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우칸촌의 실험은 출발부터 큰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국의 압박과 개입으로 비춰지는 사건도 잇달아 일어났다. 한 촌민위원이 당국을 비판하며 미국 망명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2011년 시위를 주도한 일부 주민들이 뇌물수수 혐의로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린쭈롄 역시 5년째 지지부진한 토지환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급기관에 직접 민원을 내는 상팡(上訪)을 추진하던 중 부패 혐의로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중국 당국은 린쭈롄의 자백모습까지 공개하며 이번 수사의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주민들은 2011년과 같은 집단행동을 막기 위한 공작으로 보고 강력 반발했다. 보름 넘게 린쭈롄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시위가 이어지자 당국은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던 중 아예 그의 구속을 결정했다. 주민들의 시위도 최근엔 동력을 잃은 상태다.
중국 당국의 이 같은 대응은 ‘우칸촌식 민주주의’에 대한 세간의 주목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내에서 농민의 공동재산인 집체토지의 강제수용을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인데다 우칸촌에 대한 서방언론의 주목에 대해 부담을 느꼈을 거란 해석이다. 실제 중국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지난달 20일 사설에서 “(우칸촌 주민들의) 극단적인 행동이 용납된다면 중국 사회의 공동이익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