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초였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호명하셨다. 남자 여섯, 여자 여섯. 할 이야기가 있으니 수업 끝나고 남으라셨다. 천둥벌거숭이 촌놈들이지만 웬만한 세상 이치는 가늠할 줄 알았다. 선생님은 공부가 처지는 남자애들을 여자애들에게 맡길 심산이셨다. 다른 친구들이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선생님이 열두 명을 앞으로 불러모았다. “남자 여섯에 여자 여섯이니까 각자 마음 맞는 친구끼리 짝꿍을 만들어보자.” 이웃 동네 혹은 같은 분단 친구끼리 우리는 짝을 지었다. “자, 이제부터 짝꿍들은 서로의 가디언, 즉 수호천사가 되는 거야. 언제 어디서든 서로가 서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천사가 되는 거지.”
‘나머지공부’라든가 ‘보충학습’ 같은 말 대신 선생님은 ‘가디언’이라는 생경한 이름을 우리에게 붙여주셨다. 부족한 친구를 돕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 말이 전하는 느낌이 묘하게 좋았다. 아이들은 웃고 떠들며 각자의 가디언과 교실 안에 자리 잡거나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로 갔다.
투실투실 성격 좋고 달리기 잘하던 내 가디언은 한글을 깨치지 못하고 있었다. 운동장 옆 공작대로 가디언을 데리고 간 나는 언니들이 내게 했던 방식대로 글자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자음접변이나 구개음화 같은 문법용어는 아직 몰랐지만 돌이켜보면 어린 우리가 한글 쓰기와 읽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원리는 매한가지였다. 신기하게도 내 가디언은 그렇게 어려워하던 한글 맞춤법 원리를 며칠 만에 이해하기 시작했다. 부족한 공부를 채워갈수록 가디언들끼리 몰려다니며 노는 시간은 많아졌다. 학교 텃밭에서 여섯 팀이 완두콩 따기 시합을 하고, 목공소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나뭇결 따라 대패질하는 법을 배웠다. 손끝이 여문 내 가디언은 새총과 활을 참 잘 만들었다. 아무리 배워도 그 아이만큼 멋지지는 않았지만 나무가 부러지지 않게 구부려 탄력 좋은 활시위 만드는 법, 고기잡이용 작살 만드는 법을 배웠다. 좀 더 나중에 펑크 난 자전거 튜브 때우고 갈아 끼는 요령을 알려준 것도 내 가디언이었다.
그해 여름방학 때 가디언 친구들이 우르르 놀러 왔다. 참외밭 원두막에 있는 우리에게 할머니는 강낭콩 듬뿍 넣은 개떡을 해주시며 뭐가 그리 좋으신지 연신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이 다 동무고 수호천사라고? 아무렴, 동무는 다 좋은 거야.” “공부 못하는 꼴등 이래 두요?” 내 가디언이 싱글거리며 물었을 때 할머니는 대답하셨다. “그렇고말고 곰보 째보 오줌싸개 똥싸개 부자 빈자, 서로 돕고 지켜주며 살아가는 게 진짜 세상 사는 맛이지.” 잠시 낯빛이 어두워진 할머니가 말을 보탰다. “조심해야 할 부류가 있기는 하다만. 사람 귀한 거 모르고 함부로 업신여기는 인간. 그런 종자들은 인두겁만 썼지 실은 개돼지만도 못한 금수란다.” 옥수수와 참외와 개떡을 먹으며 우리는 까르르 웃었다. 선생님과 할머니와 친구가 곁에 있는 한 금수 따위 두렵지 않았다.
벗과 어른들이 수호천사처럼 겹겹이 둘러싼 이 세상은 안전하다는 생각. 돌아보면 그 믿음에 지탱해 성장했다. 사회에 나와 가끔 ‘돼먹지 못한 종자’와 마주쳤지만 외면하면 별 탈 없으리라 여겼다. 그게 얼마나 큰 비겁함이고 죄였는지 요즘 뼈아프게 깨닫는다. 사람 도리 배울 겨를조차 없이 세상 우습게 알고 속이는 재주 용케 익힌 ‘개돼지만도 못한 종자들’이 너무 많은 걸 무너뜨렸다. 울타리를 허물고 장독대를 깨고 가축우리를 부수고 아이들이 뛰놀아야 할 방에 쳐들어와 야수의 정글로 만들기까지, 어른이 된 우리는 무얼 했던가. 옛날 선생님과 할머니의 가르침을 올곧게 지키지 못했다. 나와 내 벗과 아이들을 위해 수호천사가 되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한 대가가 크다. 자고 나면 툭툭 불거지는 사건들을 보며 분노보다 자책이 앞서는 건 그 때문이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