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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화양연화] ‘우리에게도 무민이 있었으면’

입력
2016.07.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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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카일로 섬의 무민 월드에서 아이가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의 품에 안겨 있다.
핀란드 카일로 섬의 무민 월드에서 아이가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의 품에 안겨 있다.

여름에는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겨울에는 환상적인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핀란드. 타르야 할로넨은 핀란드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핀란드 국민들의 추앙을 받는 정치인이다. 타르야 할로넨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는 “그녀는 무민마마같아”라고 했다. 국민 엄마로 불리는 타르야 할로넨에 대한 최고의 칭찬이 ‘무민마마’라니, 친구의 비유에 당혹스러웠다.

지난주 핀란드에 있는 무민 월드(Moomin World)에 다녀오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밖에서 보기에는 통통하고 귀여운 캐릭터일 뿐이지만, 핀란드 안에서 무민은 핀란드 사람들의 친구이자 수호신이었다.

무민을 하마로 착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진짜 정체는 트롤이다. 트롤은 북유럽 전설에 등장하는 괴물로, 우리의 도깨비와 비슷하다. 무민이 탄생한 것은 1945년.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의 손에서 동화책으로 태어났다. 이 책은 무민과 무민마마, 무민파파, 여자친구인 스노크 메이든, 모험가인 스너프킨, 빨간 머리의 리틀 미를 비롯한 무민 가족과 친구들이 숲 속에서 겪는 크고 작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정하면서 생각 깊은 무민의 이야기는 핀란드사람들을 매료시켰다. 핀란드는 ‘무민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핀란드 사람들의 무민에 대한 애정은 깊고도 넓다. 핀란드 집에 가면 적어도 하나 이상은 무민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이 있다고 할 정도다. 지금은 세계인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되어, 무민 동화책은 세계 60여 개국 이상 번역 출간되었고 수천만권이 판매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무민을 만나기 위해 핀란드 서남쪽 난탈리라는 작은 도시로 향했다. 난탈리는 ‘핀란드의 여름 수도’라는 별명을 가진 휴양지로, 주변에 수백 개의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무민월드는 카일로(Kailo)라는 이름의 섬에 통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무민 동화책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섬으로 이어주는 다리 입구에는 무민이 그려진 소박한 간판이 서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무민, 무민”을 합창하며, 무민을 만나기 위해 짧은 다리를 힘차게 움직였다.

숲을 지나자 아담한 공간에 무민 동화책 속 풍경이 펼쳐졌다. 빨간 지붕의 무민 집과 경찰서, 소방서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이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고 캐릭터들을 쫓아다녔다. 어린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도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들을 키덜트라고 부른다면, 대부분의 핀란드 사람들은 키덜트에 속할 정도로 무민을 좋아했다. 그들도 어린 시절 무민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해맑은 표정을 하고 있지만 무민은 지난해 고희를 넘겼다.

아이들만큼이나 행복해하는 어른들을 보며, 함께 간 핀란드 친구 사리에게 물었다. 왜 이리 핀란드 사람들이 무민을 좋아하는지. 사리는 “무민은 핀란드 사람을 꼭 닮았어. 느리고 부끄러움이 많지. 햇빛을 귀하게 여기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말이야.”라며 “숲 속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도 핀란드 사람과 비슷하지. 함께, 평화롭게 해결하는 무민은 가끔 철학자같기도 해”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무민의 취향은 자연을 좋아하는 핀란드 사람과 꼭 닮아 있었다.

무민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었다. 무민월드에 온 아이들의 행동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더운 여름인데도 아이들은 털로 온 몸을 싼 무민에게 자신을 던졌다. 하얀 털 속에 파묻혀 천국에 온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에게 무민은 기념사진을 남기는 대상이 아니라, 가서 안고 만지고 싶은 존재였다. 놀이기구라고는 하나도 없는 테마파크였지만, 누구도 심심해하지 않았다. 무민과 한바탕 뛰어놀다가 힘이 들면, 바닷가에 자리를 깔았다. 가족들과 옹기종기 무민처럼 자연 속 시간을 즐겼다. 무민월드에서는 누구나 동화책 속 무민이 되었다.

사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부러움이 일었다. 우리에게는 어떤 캐릭터가 있나 떠올려봤다. ‘뽀통령’이라 불리는 뽀로로와 아기공룡 둘리가 생각났다. 어린이들은 둘리를 모르고 어른들에게 뽀로로는 멀다. 그들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기억나지 않고, 뽀로로가 수조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일으켰다는 기사만 어렴풋이 생각났다. 마음이 함께 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를 닮은,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와 함께 사는 캐릭터는 왜 없는 것일까. 핀란드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우리에게도 무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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