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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가장 날것의 죽음과 마주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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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가장 날것의 죽음과 마주하고 싶었다”

입력
2016.07.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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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남궁인씨는 작가이자 아마추어 밴드에서 건반 연주를 맡고 있는 재주꾼이다. 그는 "앞으로 순수문학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의사 남궁인씨는 작가이자 아마추어 밴드에서 건반 연주를 맡고 있는 재주꾼이다. 그는 "앞으로 순수문학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50대 남자가 수면제를 과량 복용하고 병원으로 실려 온다. 긴 잠을 자고 난 남자는 개운한 표정으로 “우울하다 보면 그럴 때가 있는 것 아닙니까”라며 얼른 퇴원하고 싶다고 말한다. 남자가 퇴원한 뒤 2시간쯤 지나 7층에서 추락했다는 사람이 119 카트에 실려서 들어온다. 밝게 웃으며 퇴원했던 바로 그 남자다. 의사는 환자가 “가면을 쓰고 나간 사람이 아니라, 가면을 쓰고 들어온 사람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를 살릴 수 있었을까. 악마의 얼굴을 한 우울과 죽음에 대한 열망을 거스를 수 있었을까. 의사는 “비참함이 예정된 나의 운명을 암시하는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단편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33)씨가 최근 출간한 에세이 ‘만약은 없다’에 쓴 글 중 하나다. 남궁씨가 응급실에서 일하며 직접 겪은 일을 글로 풀어낸 이 책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때문인지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착각을 준다. 소설가 김영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상당한 필력이 있는 의사”라며 “의사가 되지 않았으면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첫 번째 책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그는 최근 한국일보 편집국에서 만나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 소방본부에서 공중보건의로 복무 중인 남궁인씨는 고려대 의대 졸업 후 고려대병원에서 인턴 및 레지던트를 마치고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됐다. “치기 어린 우울함에 빠져 있던” 시절 한때 죽고자 생각하기도 했던 그는 의사가 되고 나서 가장 날것의 죽음과 맞서봐야겠다는 생각에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다. “실제로 죽지 못할 거라면 어디까지 치열해질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어서”였다.

얇은 선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줄다리기를 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자진해 들어간 뒤 그는 사투의 경험을 SNS에 하나둘 써 내려 갔다. ‘글 쓰는 의사’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페이스북 구독자는 어느새 1만3,000명을 넘어섰다. 의대생들의 흉부외과 기피현상 등 의료계의 쟁점들을 논하며 화두를 던져주기도 했다. 올 초에는 ‘죽음에 관하여’라는 글로 의료계 대표 문학상인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이러한 글들이 차곡차곡 모여 ‘만약은 없다’가 됐다.

“고교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했습니다. 시인이 되고 싶었어요. 의대생 때는 문예 대회에 나가 수상한 적도 있었죠. 제대로 글을 써보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어서 의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응급실에서 겪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 건데 많은 분이 제 글에 공감해준 덕에 힘을 내서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응급실은 다양한 장르의 극적인 사연이 모이는 곳이다. 술 취한 사람이 소동을 피우는 코미디의 무대이자 참혹한 범죄와 수수께끼 같은 미스터리의 현장이고 슬픈 가족드라마의 배경이다. 그는 “병원 안에 있지만 병원 밖 세상을 그대로 넘겨받는 곳”이라며 “세상의 축소판 같은 소우주”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가 이성을 잃고 감정에 치우쳐버리면 응급실의 콘트롤타워가 흐트러져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상태로 있으려고 노력한다”며 “슬픈 일이나 분노, 절망 앞에서도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다”고 했다. 가슴 속에 꾹 눌려 있던 감정은 며칠 뒤 글과 함께 발산된다.

남궁인씨는 책을 출간한 뒤 포털사이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시작했다. 이 역시 응급실 이야기다. 9월 말까지 10주간 이어질 예정인데 벌써 목표액 300만원의 70% 가까이 모였다. “병원에서 불치병이나 치료법이 없어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많았습니다. 제 글로 이런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고경석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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