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과제 설정 ‘독립연구’ 도입
인문학 등 강좌로 장래설계 돕는
미래스쿨ㆍ문명전환 아카데미 추진
바이오헬스 등 5개 분야 융ㆍ복합
세계적 수준 학술기관 육성 목표
용인 캠퍼스에 R&D 단지 조성
대학의 ‘지구적 공헌’을 기준
세계 대학평가 새 지표 개발 중
9월 ‘대학 사회적 책임’ 학술대회
저서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에서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어 정보화 혁명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지난달 27일 8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가 점친 대로 산업 사회는 지식 기반 사회로 진화했고 오늘날 우리는 손에 든 휴대폰으로 전 세계와 실시간으로 접속하면서 온갖 정보를 찾아낼 수 있게 됐다.
기술 발달 단계는 정점에 올랐지만 다음 세계의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기로에 선 인류 문명이 더 나은 미래로 향하는 길에 들어서려면 이른바 ‘전환’이 필요하고 가장 확실하고 빠른 수단이 고등교육 혁신이라고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경희대는 학문간 융ㆍ복합 교육 시도와 의욕적인 인문학 프로그램 개발로 대학 교육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경희대, 혁신 대장정 나서다
조인원 경희대 총장은 학생ㆍ교수들과의 대담집 ‘내 안의 미래’(2016)에서 “미래 대학은 경제적 가치 외에 주력해야 할 분야가 많다”며 “빈곤과 질병, 소외와 인권, 자유와 존엄, 환경과 기후변화, 갈등과 폭력 같은 다양한 문제를 풀어야 하고, 정신적 풍요와 문화적 성숙을 위해서도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경희대가 시도하고 있는 교육 혁신의 지향점을 요약하고 있다.
2009년 개교 60주년을 계기로 ‘대학은 왜 존재해야 하는가’, ‘미래 대학의 요건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제시했던 경희대가 내놓은 답은 2011년‘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이었다. 후마니타스 칼리지는 모든 신입생이 여러 교양 과목들을 수강하도록 해 다양한 관점과 폭넓은 이해력, 유연한 접근법을 익히게 함으로써 교양 교육의 새로운 전범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후마니타스 칼리지 설립으로 대학 혁신의 첫발을 뗀 경희대는 교육과 학습, 연구와 실천, 행정과 재정, 인프라에 이르는 대대적인 전환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른바 ‘함께하는 대학 혁신 대장정’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독립 연구가 대표적 사례다. 독립연구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과제를 설정하고 직접 섭외한 교수에게 지도를 받으며 과제를 수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교육 패러다임을 일방향에서 양방향으로 바꾸자는 발상에서 비롯됐다. 이를 위해 학생들이 취업과 창업은 물론 비정부 기구 참여나 대안적 삶까지 설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희 미래창조스쿨’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 학부 학생들에게까지 개방되는 대학원 수준 교양 강좌 ‘문명전환 아카데미’도 기획 중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21일 “미래창조스쿨과 문명전환 아카데미는 문명사뿐 아니라 미래학과 미학, 윤리학, 인지과학, 도시학 등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게 한다”고 소개했다.
혁신은 융ㆍ복합 분야로 확대된다. 이미 2011년부터 준비해 온 ‘5대 연계 협력 클러스터’가 가시화하고 있다. 경희대는 바이오 헬스와 미래과학, 인류문명, 문화예술, 사회체육 등 5개 분야에서 융ㆍ복합 프로그램을 개발, 세계적 수준인 학술기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구체적으로 경기 용인시 국제캠퍼스 부지에 총 33만m²(10만평) 규모인 첨단 연구ㆍ개발(R&D) 단지가 조성되고 서울캠퍼스 인근 홍릉 지역에는 바이오 헬스 기반 연구단지가 들어선다. 학문 단위를 새롭게 조직하면 세계적 파급력을 갖는 것은 물론 학생들의 학습권이 크게 향상되고 신지식ㆍ신기술을 창출하는 연구 역량도 국제적 수준이 될 것이라고 학교 측은 기대하고 있다.
지구적 공헌이 대학 의무
경희대가 2009년 이후 추구해 온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세계적 차원의 대학 공공성 구현이었다. 이에 맞춰 경희대는‘경희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모토로 인류가 직면한 문명사적 위기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인문학적 프로그램을 개발해 왔다. 후마니타스 칼리지와 미래문명원, 지구사회봉사단(GSC), 인류문명 클러스터 등이 그 산물이었다.
현재 개발 중인 ‘세계 대학 평가 지표’는 대학의 지구적 공헌을 기준으로 삼는 지표다. 대학 서열화를 고착화하는 기존 대학 평가에서 벗어나 대학 핵심 가치를 경쟁에서 협력으로, 국가에서 지구로, 지속 불가능성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바꾸려는 의도다.
지난 4월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를 초청해 ‘세계 지성에게 묻는다: 문명 전환과 아시아의 미래’ 강연을 열었던 경희대는 9월 21일부터 3일간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세계평화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Peace BAR FestivalㆍPBF)’를 연다. 유엔이 제정한 ‘세계평화의 날’ 35주년에 맞춰서다. 한국 시민사회가 세계적 지성들과 함께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 혁명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문명사적 위기에 대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구체적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유엔 세계평화의 날은 경희대 설립자인 조영식(1921~2012) 박사가 1981년 열린 세계대학총장회의(IAUP)를 통해 유엔에 제안했고 같은 해 11월 유엔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경희대는 매년 9월 21일 세계평화의 날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PBF에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환경 문제를 다뤄온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인 로마클럽과 부다페스트클럽, 세계예술과학아카데미(WAAS)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한국의 지성계와 교육계뿐 아니라 종교인, 예술가, 시민운동가, 기업인, 정치인들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예정이다. 경희대는 “특히 이번 ‘PBF 2016’은 세계적 싱크탱크와 한국 지성계를 연결하는 교량뿐 아니라 미래 고등교육 혁신의 진로를 구체화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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