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국 금지 조항 한시적 풀리며
불법체류자들 자진출국 2배 늘어
외국인 채용했던 소규모 사업장
공백 길어지자 일손 부족 심각
간병인 등 쓰던 개인ㆍ가정도 고충
“경제적 손실 커… 대책 마련 필요”
직장인 정모(39)씨는 이달 8일 초등학생 딸(12)을 중국 선양(瀋陽)으로 유학 보냈다.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돌봐주던 중국동포 입주도우미 김모(52ㆍ여)씨가 법무부 ‘자진출국 불법체류자 입국금지 면제 제도’ 시행에 따라 지난 5월 중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정씨는 김씨가 떠난 뒤부터 딸이 등교를 꺼리는 등 불안 증세를 보이자 고심 끝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정씨는 20일 “이혼 후 홀로 키우던 아이를 맡아 준 김씨를 대신할 입주도우미를 찾기 어려워 딸을 중국으로 보내기로 했다”며 “김씨가 6개월 후 다시 돌아 온다고 약속했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올해 4~9월 불법체류자 자진출국제를 시행하면서 한국을 떠난 외국인 수만명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해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전에는 불법체류 기간이 1년 미만인 외국인만 다시 입국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이 제도는 불법체류기간과 상관 없이 외국인 재입국을 허용한다. 불법체류 기간이 1년 이상인 외국인들이 대다수라 자진출국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이 많지 않았지만 법무부가 재입국 금지조항을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출국러시가 이어진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3개월 동안 자진출국한 불법체류자는 총 1만7,600여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644명)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서민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외국인노동자들의 공백이 길어진 탓에 일손 부족을 호소하는 사업장들의 볼멘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용 시 비자를 확인하는 대규모 업체보다 간단한 인적사항만 확인하고 외국인들을 채용했던 소규모 사업장들은 구인난에 허덕이는 중이다. 서울 대림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모(56ㆍ여)씨는 “주방 일을 봐주는 외국인 직원 두 명이 지난달 중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서빙 직원과 사장인 내가 번갈아 일을 도맡고 있다”며 “직업소개소에 문의해도 박봉에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려는 내국인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서울 영등포ㆍ구로구 일대 영세 사업장들은 심각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영등포의 D직업소개소 사장은 “식당 등 5명 미만 외국인을 채용하는 소규모 업체 절반 이상은 종업원들이 자국으로 떠났거나 출국을 앞두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들이 돌아오는 내년 이전까지 파트타임을 할 사람을 찾는 문의가 2배 이상 폭증했다”고 귀띔했다.
정씨처럼 외국인들을 입주도우미나 간병인으로 고용했던 개인ㆍ가정의 고충은 더 하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박모(73)씨도 8년 동안 자신을 돌봤던 중국동포 입주간병인 김모(62ㆍ여)씨가 지난달 출국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박씨는 “생활 패턴부터 입맛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간병인이 떠나 일상이 혼란스러워졌다”며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출국을 앞둔 불법체류자들도 마음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 구로구 한 미용실에서 3년 째 보조업무를 하고 있는 필리핀인 L(31ㆍ여)씨는 “이달 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다시 돌아왔을 때 일할 직장이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자진출국제가 불법체류자를 줄이는데 효과를 내고 있지만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은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명수 한국이민정책학회 회장은 “국내 불법체류자들은 합법적으로 들어왔다가 체류 기간을 넘긴 경우가 많아 정식 비자로 재입국하더라도 다시 규정을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며 “재입국자들이 불법체류할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수집과 관리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일부 사업장의 근로 공백 혼란을 막고 재입국자들이 불법체류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경찰 등과 협력해 단속ㆍ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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