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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찰을 거닐다, 강변서 뛰놀다, 별미에 빠지다

입력
2016.07.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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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소리길 그 푸른 길을 걷다 보면 마음 속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합천=이성원기자
해인사 소리길 그 푸른 길을 걷다 보면 마음 속 소리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합천=이성원기자

경남 합천은 산 높고 골 깊은 고장이다. 가야산(1,430m)을 비롯 황매산(1108m), 오도산(1,134m) 등의 높은 산줄기가 출렁거리고 합천호의 너른 호수와 황강의 도도한 강줄기가 땅을 적신다. 푸른 청정의 땅 합천에서 마음 속 더위까지 씻어내는 올 여름 피서 방법을 찾아봤다.

우주만물이 소통한다는 소리길

국립공원은 역시 급이 달랐다.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들어서자 우람하고 운치 있는 소나무들이 진초록을 뿜어냈다. 기암의 드높은 산자락에서 우렁차고 맑고 풍부한 물줄기가 거칠게 흘러내린다. 계곡의 숲그늘에선 눈부터 시원해진다. 암반을 타고 흘러내린 물소리에서 청량감은 배가 된다.

해인사 입구의 홍류동 계곡이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흐르는 물조차 붉어진다는 곳이다. 이 홍류동 물길 위로 넘나드는 걷는 길이 놓여있다. 소리(蘇利)길. 이름도 풍경만큼이나 멋지다. 우주만물이 소통하고 자연이 교감하는 생명의 소리라고.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풍경소리, 목탁소리가 어우러진다. 자연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최상의 앰프와 스피커로 전해지는 듯하다. 오래 걸으면 마음 깊은 곳의 소리 또한 들려올 것 같다. 계곡길은 대장경테마파크 앞에서 해인사 상가단지까지 7㎞ 가량 이어지고 이후 다시 해인사까지 짙은 숲길이 연결된다 . 가야산 19경(景) 중 16개의 경치가 소리길을 지나며 볼 수 있을 만큼 아름다움이 집적된 길이다.

소리길은 또한 신라말 대학자 최치원의 길이라고도 한다. 그는 삶의 마지막을 이 가야산 품에 안겨 보냈다. 소리길 주변엔 최치원의 자취가 여럿 남아있다. 그가 수도하던 농산정, 그의 시가 새겨져 있는 암벽 치원대, 붓을 씻었다는 체필암, 시를 읊었다는 완재암 등. 소리길의 하이라이트는 농산정에서 낙화담까지의 구간이다.

소리길이 안내하는 대로 걷다 보면 해인사에 닿게 된다. 불보사찰인 통도사, 승보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법보사찰인 해인사는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다.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고찰이다. 이중 최고의 보물은 팔만대장경. 대웅전 뒤편 사찰의 제일 높은 곳에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있다. 나무로 만든 팔만대장경이 760여 년이 지난 지금껏 보존될 수 있었던 건 소박해 보이기만 한 장경판전 건물의 과학적인 구조 때문이다. 바닥을 높여 숯과 소금을 깔았고, 앞 뒷면 크기를 달리한 창살은 가야산의 골바람을 들숨 날숨 쉬듯 환기하며 습도 등을 자연적으로 조절했다고.

은빛 백사장에 어린 황강의 추억

새벽 물안개 드리운 황강에서 카누를 즐기는 모습. 합천군청 제공
새벽 물안개 드리운 황강에서 카누를 즐기는 모습. 합천군청 제공

합천이 고향인 지인은 어릴 적 읍내 함벽루에서 곧장 강물로 다이빙하고, 백사장을 거닐다 은어를 잡으며 더위를 씻었던 것을 최고의 추억으로 꼽았다. 합천의 땅 정중앙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황강에서의 추억이다.

합천호에서 흘러내린 황강의 풍경이 매혹적이다. 아름다운 백사장이 펼쳐지고 수풀 가득 녹음이 우거졌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고 할 때 머리 속에 떠오르는 그런 풍경의 강줄기다.

황강의 읍내 백사장에선 29일부터 31일까지 황강레포츠축제가 열린다. 지상최대 물싸움, 맨손 은어잡기, 드론 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됐다. 지난해까지 메인 이벤트였던 수중마라톤은 올해엔 열리지 않는다. 대신 황강패밀리컬러레이스가 준비됐다. 천연색소 가루와 장애물을 이용한 이색 달리기다.

함벽루 건너편의 백사장엔 옐로비치파크라는 강물을 이용한 천연 워터파크가 조성돼 있다. 다양한 슬라이드 블롭점프 등을 즐길 수 있고 목재카누 체험도 가능하다.

황강카누학교 등 합천엔 4개의 카누클럽이 운영 중이다. 동호인들은 이른 새벽 물안개 자욱한 황강을 따라 카누를 즐기곤 한다.

합천영상테마파크의 타임머신 여행

합천영상테마파크 세트장.
합천영상테마파크 세트장.

합천댐 바로 아래 강변엔 합천영상테마파크가 있다. 전국에 세트장이 많지만 이 합천 세트장은 근대의 풍경으로 특화된 곳. 우리 역사의 한 시대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하다.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촬영하기 위해 처음 만들어진 뒤 ‘에덴의 동쪽’ ‘각시탈’ ‘포화 속으로’ ‘고지전’ ‘암살’ 등 수십 편이 촬영됐다. 작품 하나씩 찍을 때마다 세트도 늘어났고 저마다의 사연과 이야기를 쌓아나갔다.

이 세트장의 일부 건물엔 식당 커피숍 등이 운영되고 있고, 숙박이 가능한 건물도 여럿 있다. 영화 ‘마이웨이’ 세트인 일본식 건물에선 다다미방에서의 하룻밤도 체험할 수 있다.

최근 이 세트장에 세워진 야심작은 청와대다. 대통령이 궁금한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실제 건물의 68% 크기로 지어졌다. 세트장은 이 비율이 가장 적합하다고 한다. 적당한 규모감도 나오는데다 실제 크기에 비해 효율적으로 인력과 장비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청와대의 회의실 등은 실제 회의공간으로 활용하는데 반응이 좋다고.

합천영상테마파크는 이달 30일부터 밤이면 유령이 출몰하는 고스트파크로 변신한다. 옛 서울의 밤거리에서 오싹한 귀신놀이로 더위를 씻어내자는 것이다. 8월 15일까지 매일 오후 7~12시 운영된다. 신 전설의 고향, 도깨비마을, 드라큘라저택, 감금병동, 좀비감옥, 비명도시 등을 체험할 수 있고 고스트들과 함께 하는 전차운행 체험도 진행된다.

풀빵팥죽 비빔수육 드셔보셨나요

0합천읍 오일장의 명물인 풀빵 팥죽.
0합천읍 오일장의 명물인 풀빵 팥죽.
오일장에 나오셨다 풀빵 팥죽을 드시고 계신 어르신.
오일장에 나오셨다 풀빵 팥죽을 드시고 계신 어르신.

합천읍의 장날은 3ㆍ8일. 이 장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풀빵’이라 불리는 특이한 팥죽이다. 시장통 허름한 한 식당에서 한 그릇 2,000원에 내놓는다. 진하게 곤 팥죽에 국화빵을 새알 삼아 넣어 먹는 것. 전에는 시장의 여러 집에서 이 풀빵을 했지만 지금은 호남식당 한 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가게 주인 최호남(65)씨가 “시어머니 때부터 해온 것”이라 하니 40년이 훌쩍 넘은 메뉴다. 합천의 많은 이들은 이 풀빵과의 인연을 맺고 있다. 장날에만 파는 건 만들기가 쉽지 않아서란다. 4,5일 연탄불에 푹 삶아야 이런 진한 색의 팥죽이 나온다고.

합천에선 소와 돼지를 키우는 농가가 유독 많다. 합천읍의 3ㆍ3국밥집(055-934-0033)에선 비빔수육국수란 특별한 메뉴를 내놓는다. 수육과 비빔국수의 앙상블이 절묘하다. 이 집의 일반 수육이나 돼지국밥도 훌륭하다.

합천군 삼가면에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한우를 즐길 수 있는 식육식당이 30여 집 모여 있다.

해인사 소리길을 걷고 난 뒤엔 한 상 가득한 대장경 밥상을 받아보자. 2011년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을 기념해 개발된 메뉴로 합천군 지정을 받은 백운식당(055-932-7393)과 해인식당(055-933-1117)에서 맛볼 수 있다.

합천=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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